두쥐안→수리개→초이완…36일 비 내린 도쿄, 태풍은 왜 에반게리온 '사도'처럼 보일까? [시사뒷담]

입력 2026-10-01 21:09:00 수정 2026-10-01 2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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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이어진 도쿄와 일본 남쪽 해상에서 다가오는 태풍을
폭우가 이어진 도쿄와 일본 남쪽 해상에서 다가오는 태풍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사도 출현 장면처럼 비유해 형상화한 이미지. 실제 작품 속 장면이나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제3신도쿄시를 향하는 '사도'는 하나를 물리쳤다고 끝나지 않는다. 모습을 달리한 다음 사도가 다시 나타난다.

36일 연속 강수가 관측된 일본 도쿄의 남쪽 바다에서도 최근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상대는 사도가 아니라 태풍이다.

◆8월 27일부터 하루도 안 빠졌다…도쿄 '36일 연속 비'

도쿄 도심에서는 10월 1일 오전 0시 2분 0.5mm의 비가 관측됐다. 이에 따라 8월 27일부터 이어진 연속 강수일은 36일로 늘었다.

1876년 관측 개시 이래 가장 긴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19년 6월 27일부터 7월 29일까지 33일이었다. 특히 올해 9월은 30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강수가 관측됐다.

다만 36일 동안 종일 비가 왔다는 뜻은 아니다. 하루 중 한 차례라도 관측 가능한 비가 내린 날이 36일 연속 이어졌다는 의미다.

도쿄의 9월 총강수량은 696.5mm에 달해 9월 기준 관측 사상 가장 많았다.

이 긴 비의 기본 무대는 일본 남쪽과 혼슈 부근에 장기간 자리 잡은 가을장마전선이었다. 여기에 태풍과 태풍 주변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반복적으로 가세했다.

일본기상청도 올해 9월 동부 일본 태평양측 강수량이 평년의 236%로, 1946년 통계 작성 이후 9월 기준 가장 많았다고 분석했다. 원인으로는 '태풍과 습한 공기, 가을장마전선'을 함께 꼽았다.

올해 9월 동부 일본 태평양측 강수량이 평년의 236%로, 1946년 통계 작성 이후 9월 기준 가장 많았다고 분석한 일본 NHK 보도
올해 9월 동부 일본 태평양측 강수량이 평년의 236%로, 1946년 통계 작성 이후 9월 기준 가장 많았다고 분석한 일본 NHK 보도

◆크로반 지나니 두쥐안, 두쥐안 지나니 수리개

순서를 놓고 보면 더욱 묘하다. 9월 상순에는 24호 태풍 크로반(KROVANH)과 습한 공기의 영향으로 가을장마전선이 활성화됐다. 일본기상청은 이 영향으로 도카이 지방 등에서 선상강수대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25호 태풍 두쥐안(DUJUAN)이 등장했다. 21일에는 관동고신 지방에 접근해 이즈제도와 지바현 등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를 만들었다.

그 다음은 26호 태풍 수리개(SURIGAE)였다. 수리개는 일본 남쪽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도쿄를 직접 관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풍 주변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가을장마전선으로 흘러들면서 전선 활동을 강화했다. 일본기상청 역시 9월 하순 후반 동·서일본의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이어진 데 수리개의 영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태풍은 반드시 도쿄를 '직격'해야 도쿄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수백~수천km 떨어져 있어도 막대한 수증기를 전선으로 공급해 비구름을 강화할 수 있다.

일본 가을장마전선을 강화한 26호 태풍 수리개(SURIGAE, 위)가 소멸 수순에 접어든 가운데, 27호 태풍 초이완(CHOI-WAN, 아래)이 10월 1일 발생해 북상 중이다. 일본기상청
일본 가을장마전선을 강화한 26호 태풍 수리개(SURIGAE, 위)가 소멸 수순에 접어든 가운데, 27호 태풍 초이완(CHOI-WAN, 아래)이 10월 1일 발생해 북상 중이다. 일본기상청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 Joint Typhoon Warning Center) 27호 태풍 초이완 예상경로. JTWC 홈페이지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 Joint Typhoon Warning Center) 27호 태풍 초이완 예상경로. JTWC 홈페이지

◆수리개 빠져나가는데 또 등장한 초이완

그리고 10월 1일. 수리개가 일본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가운데 이날 오전 3시 마리아나제도에서 27호 태풍 초이완(CHOI-WAN)이 발생했다. '하나가 지나가자 또 하나가 나타난' 셈이다.

초이완은 앞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빠르게 발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매우 강한 세력으로 발달한 뒤 5~6일쯤 오가사와라제도 동쪽 해상으로 올라올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크다.

다만 아직 '도쿄행 태풍'이라고 부를 단계는 아니다. 각국 수치예보에서는 본주 동쪽 먼 해상을 지나는 시나리오가 우세하고, 동서 방향 예상경로에도 상당한 편차가 있다.

그럼에도 도쿄 입장에서는 남쪽 바다에 또 등장한 태풍을 무심히 보기 어렵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을장마전선과 태풍이 서로 영향을 주며 장기 강수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향후 초이완의 예상경로가 얼마나 서쪽으로 형성되는지, 일본 부근 전선에 수증기를 공급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지가 관건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에 등장하는 제4사도 샴셀. 넷플릭스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에 등장하는 제4사도 샴셀. 넷플릭스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에 등장하는 사도 진로예상도. 넷플릭스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에 등장하는 사도 진로예상도. 넷플릭스

◆"使徒、襲来"(사도, 내습)…올해 태풍이 '사도'처럼 보이는 이유

그래서 떠오르는 장면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작품 속 정체불명의 적 '사도'는 제3신도쿄시를 향해 반복해서 나타난다. 하나를 막아내고 나면 모습도 능력도 다른 다음 사도가 등장한다. 에반게리온이 매번 다른 방식으로 이에 대응한다.

올해 일본을 향한 태풍도 묘하게 닮아 보인다. 크로반은 가을장마전선을 자극했고, 두쥐안은 일본 관동 지역에 직접 접근했다. 수리개는 일본 남쪽을 돌아가면서도 전선에 습한 공기를 공급했다. 그리고 수리개가 사라지기도 전에 남쪽에서 초이완이 새로 발생했다.

같은 태풍이지만 다가오는 길도, 비를 만드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

물론 일본의 재난을 애니메이션 속 전투에 빗대 희화화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결정적인 차이는 마지막에 있다.

사도는 쓰러뜨리면 끝났지만 태풍은 쓰러뜨릴 수 없다. 예보와 예상경로를 읽고, 전선과 비구름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피해를 줄이며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36일째 비를 경험한 도쿄가 남쪽 바다의 또 다른 태풍이 유난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