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3>이육사, 아름다운 이름이야말로 무궁한 수명

입력 2026-09-23 09:18:55 수정 2026-09-23 09:41:21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서세옥(1929-2020),
서세옥(1929-2020), '육사 이선생상(陸史李先生像)', 종이에 수묵, 29.5×27㎝, 개인 소장

'육사 이선생상'으로 표제를 쓰고 '산정(山丁) 등하(鐙下) 모병기(摹幷記)'라고 한 서세옥의 스케치풍 이육사(1904~1944) 초상화다. 사진을 보고 그려 '베낄 모(摹)'라고 했다. 흑백의 사진만으로도, '이육사'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의 온도가 높아지지만, 단 한 붓도 허투루하지 않는 청량하고 적확한 수묵 초상화도 각별하다. 서세옥의 타고난 재(才)와 닦아서 얻어진 능(能)이 조화로운 솜씨이다.

나이 차가 불과 25년인 두 분은 청년기를 대구에서 보냈다. 서세옥은 대구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해방 후 서울로 진학해 동양화를 전공했다. 이육사는 안동시 도산면에서 태어나 1920년 17세 때 가족이 모두 대구로 이사 왔다. 당시 대구의 거장 석재(石齋) 서병오에게 6형제가 모두 서화를 배웠다. 그중 셋째 두인(斗人) 이원일(1906~1955)은 1922년 서병오가 창립한 교남시서화연구회에서 서화가로 활동한다. 육사도 서예를 잘 했고 묵란에 솜씨가 있었다. 이육사가 걸었던 대구의 길들을 다니며 자란 서세옥이라 육사의 찬란한 생애에 더욱 감정이 이입됐을 것 같다.

'이육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1927년)으로 1년 7개월간 수감됐을 때 대구형무소 수인번호 '264'에서 나왔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고, 이활(李活)이라는 필명도 사용했다. 대구이육사(大邱二六四), 이육사(二六四), 육사(六四), 육사(戮史), 육사(肉瀉), 육사(陸史)로 자신을 나타냈다. '죽일 육(戮)'의 육사는 치욕의 시대를 항일투쟁으로 일관한 그가 끝내는 중국 북경의 일본제국 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한 불굴의 이름이다. '고기 육(肉)', '쏟을 사(瀉)'의 육사는 살점이 뜯겨 나가는 혹독한 고문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던 강인한 이름이다.

'뭍, 육지, 언덕 육(陸)'의 육사(陸史)는 39년 짧은 생애 동안 17번이나 체포, 투옥됐던 불꽃같은 삶 속에서도 시인이기를 멈추지 않았던 역사에 우뚝한 이름이다. 아름다운 이름이야말로 불멸의 무궁한 수명이다. 명시무궁수(名是無窮壽)!

시인 이육사는 아름다운 서정과 강인한 의지가 담긴 시로 암울한 현실 속의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전해줬다.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대구의 미술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