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중요 길목, '차가운 고산사막'
대상(隊商)들의 발이던 쌍봉낙타의 느린 걸음
훈더는 사람의 온기가 사막을 품고 사는 곳
◆사막이 피어난 계곡, 실크로드의 오아시스로
구불구불한 험준한 산길을 따라 차가 고도를 낮출 때마다 창밖의 공기는 상큼해지고 심장 박동은 고요 속에 더욱 또렷해진다. 거친 암석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친 그 아득한 골짜기 끝으로 내려서자, 거센 바람 소리 사이로 은빛 모래가 흩날리는 낯선 풍경이 다가온다. 바로 훈더(Hunder) 마을이다.
하늘과 맞닿은 설산 아래 황금빛 모래언덕이 펼쳐지고, 그 곁으로 푸른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사막과 빙하, 초원과 오아시스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풍경은 처음 마주하는 순간 현실보다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이곳은 오래전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잇던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중국 신장과 카슈가르를 출발한 대상들은 카라코람 고개를 넘어 이곳에 도착했고, 다시 레와 카슈미르를 거쳐 인도와 서아시아로 향했다. 낙타 등에 비단과 향신료, 차와 보석을 실은 대상들이 머물던 훈더는 사막 한가운데의 쉼터이자 문화가 교차하던 오아시스였다.
오늘날 훈더는 행정적으로 라다크 연방직할령 누브라 계곡의 대표적인 마을이다. 주민 수는 많지 않지만, 관광과 농업, 과수 재배를 중심으로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살구와 사과, 보리와 채소가 자라고, 여름이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자들로 마을이 활기를 띤다. 과거 대상들의 발걸음이 머물던 길은 이제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훈더가 어느 마을과도 다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막이다.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서 사막을 만난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카라코람 산맥과 사세르(Saser)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은 시욕강을 따라 흘러내리며 막대한 양의 모래와 퇴적물을 운반했다. 그 결과 해발 3,000m가 넘는 히말라야 고원에 세계적으로도 드문 '차가운 고산사막'이 탄생한 것이다.
마을 뒤편 언덕에는 라캉 카르포(Lhakhang Karpo), 즉 '하얀 사원'이라 불리는 오래된 불교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원에 오르면 훈더 마을과 모래사막, 시욕강, 그리고 멀리 카라코람 산맥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여행자는 그 풍경 앞에서 종교를 떠나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겸손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모래언덕을 걷는 쌍봉낙타와 사람의 온기
훈더의 아침은 고요했다. 밤새 차갑게 식었던 공기는 해가 떠오르자 서서히 온기를 품기 시작했고, 설산 위로 비친 햇살은 순백의 능선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민박집 마당에 서자 멀리 모래언덕 너머로 두 개의 혹을 가진 낙타들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막과 설산이 한 장면 안에 어우러진 풍경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 히말라야 한복판에서 사막을 걷는 낙타를 만난다는 사실은 여행 내내 가장 신비로운 경험 가운데 하나였다.
이 낙타들은 오래전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오가던 실크로드 대상(隊商)들의 발이었다. 카슈가르와 야르칸드에서 출발한 상인들은 비단과 향신료, 차와 보석을 싣고 험준한 카라코람 산맥을 넘어 훈더에 도착했다. 혹독한 추위와 메마른 사막을 견디도록 진화한 쌍봉낙타는 높은 고도와 거친 기후에도 강해 이 길을 오갈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오늘날에는 대상의 긴 행렬 대신 여행자들의 웃음소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낙타의 느린 걸음에는 천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여행자도 낙타 등에 몸을 맡겼다. 낙타는 서두르지 않았다. 모래 위에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느린 걸음 덕분에 오히려 주변 풍경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바람이 모래결을 쓰다듬고, 멀리서는 시욕강이 은빛 띠처럼 반짝였다. 바쁜 일상에서는 잊고 지냈던 '천천히 걷는 시간'이 이곳에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막이라고 하면 뜨거운 태양과 끝없는 모래바다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훈더의 사막은 다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자리한 차가운 사막이다. 한낮에는 햇살이 따갑지만, 해가 지면 기온은 급격히 떨어진다. 황금빛 모래언덕 뒤편으로는 만년설을 이고 선 카라코람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뜨거움과 차가움, 메마름과 풍요로움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자연이 빚어낸 경이로운 조화였다.
사막을 빠져나오자 시욕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강은 오랜 세월 모래와 자갈을 운반하며 척박한 땅에 생명의 물길을 열어 주었다. 강가에는 버드나무와 포플러가 바람에 흔들렸고, 그 너머로 살구나무와 채소밭이 이어졌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도 사람들의 삶은 강물을 따라 뿌리내리고 있었다.
◆ 별빛 아래 피어나는 훈더의 밤
어둠이 내리자 마을은 작지만 활기찬 야간 바자르로 변모한다. 마을 축제 기간을 맞아 하나둘 불을 밝히는 등불 아래로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한데 얽혀 활력이 넘쳐난다. 고산의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도 장터의 열기는 사람들의 온기로 따스하게 피어오른다.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맑은 시냇물 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진다. 시냇가 옆 소박하게 마련된 야외 카페에는 작은 등불 아래 모여 앉은 이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물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어우러져 훈더만의 특별한 밤의 교향곡을 만들어 낸다.
가판대 위에는 낮 동안 햇살을 머금고 자란, 말린 살구와 살구씨 기름 그리고 정성스레 손으로 짜낸 야크 털 목도리와 수공예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물건을 파는 주민들의 손길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과 손님을 향한 다정한 미소가 배어 있다.
바자르 한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다크식 수제비 '스큐(Skyu)'와 만두 '모모(Momo)'를 파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따스한 국물 한 그릇을 받아 들고 현지인들과 섞여 앉아 음식을 나누는 동안, 그들의 삶에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는 친밀함을 느낀다.
광장 한가운데서 라다크 전통악기 '스우르나'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전통 의상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대형을 갖추고 유려하고 단아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둔탁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장단은 깊은 밤의 정적을 깨우며 대지를 흔든다.
음악이 고조되자 마을 사람들은 여행자들의 손을 잡아 이끈다. 수줍게 원 안으로 들어선 이방인들도 이내 음악의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고 손을 흔든다. 나라와 언어, 나이도 다른 이들이 오직 이 순간의 기쁨으로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잊지 못할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
춤판이 머물고 어둠이 더욱 깊어지자,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억수 같은 별자리가 사막 위로 눈부시게 피어난다. 거친 산맥과 모래사막,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따스한 사람들의 미소. 훈더의 별빛 아래 서서 여행자는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이란 그리 거창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길 위에서 만나는 온기와 순간의 인연을 가슴 깊이 품어 안는 여정이라는 것을.
'훈더는 사막이 있는 마을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사막을 품고 살아가는 곳이었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