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죽기 직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까? 과학자들은 사람의 사망 직전과 직후의 15분 동안의 뇌파 기록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심장 박동 정지 전후 30초 동안 꿈을 꾸거나 명상, 과거의 일을 회상할 때 나타나는 감마파로 알려진 뇌파 활동이 증가한 것이다. 이는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순간에 뭔가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죽음 직후 혼백이 몸을 완전히 떠나기 전까지도 자기애(自己愛)가 머문다고 한다. 그만큼 자기에 대한 연민과 애착은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인간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굴레이니 차라리 이 불안한 존재의 본능에 순응하고 받아들이자. 다만 이것에 너무 빠져 있지 않게 균형을 잡는 것, 나아가 그 마음을 타인으로 확장할 수 있다면 더 좋다. 나를 챙기는 것만큼 타인을 챙길 수 있는 마음.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를 넘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도 있지 않은가. 사랑이 바로 평화의 주춧돌이고 이것이 부족하면 관계의 균열이 생겨 미움의 싹이 튼다.
문학과 영화, 밴드의 이름에서도 '사랑과 평화'와 '전쟁과 평화'라는 단어들이 서로 짝으로 대칭을 이루지만 결론은 평화로 모여진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미 수많은 모순과 결과들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모든 것은 마음이 문제다. 스스로 내려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자. 그 마음에서 요동치는 이기와 탐욕을 어느 선에서 끊어낼 수 있는 지혜와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조화와 균형이 깨진 극단적인 상태가 치명적인 질병, 암(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혼자 영원히 살겠다는 이기의 끝판왕 암세포에 끌려다닌 게 결국 화근인 셈이다. 온몸을 오염시켜 혈관과 장기들을 막아 다른 세포들을 굶어 죽게 하고 결국 자신도 몸과 함께 사망하는 것이 바로 공멸을 지향하는 암의 속성이다. 끊임없는 욕망과 이기의 종말이다. 삶의 끝은 결국 죽음이지만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잘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즉심(畵卽心). 그림은 곧 마음이다. 동양 회화의 오랜 진리 같은 문구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체화된 감각이 바로 핵심이다. 수묵화는 대상의 외형보다 뜻을 중시한다. 그린 이의 의도가 그림에 반영돼 나오기에 사람과 그림이 동일시될 수밖에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이완용과 안중근의 글씨를 다르게 평가하는 이유다.
미움과 마음은 점 하나 차이다. 점 하나가 어디에 붙는가에 따라 미움이 되기도 하고 마음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점 하나를 어디에 놓고 살아야 하는지 글자 자체가 이를 보여준다. "사랑 참 어렵다. 많이 아프다." 이승철의 노래 가사처럼 평화로 가는 길은 이 무겁고 어려운 점 하나를 어디에 찍는가에 달렸다. 삶이 끝나는 그 시점에 우리 뇌에선 과연 어떤 장면이 흐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