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1984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제임스 브룩스의 '애정의 조건'은 엄마와 딸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리얼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영화에서 엄마 오로라는 딸이 선택한 사위가 맘에 들지 않고 그런 사위에게서 애를 셋이나 낳은 딸 엠마가 이해 안 된다.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딸의 금전 지원 요청에 냉담하지만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고 아끼는 엄마. '애정의 조건이란 무조건'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보다 더 설득력 있게 묘사한 영화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른 하나. 권위와 폭력이 몸에 밴 아버지 밑에서 학대와 억압을 받으며 자란 탓에 스무 살까지 무학에 문맹이었던 남자.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언어학자가 된 가비노 레다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빠드레 빠드로네'.
'애정의 조건'을 보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실감나지만, '빠드레 빠드로네'에선 삶의 환경이 모진 부모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60년 전 우리나라 시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 자식을 농사 밑천이고, 살림 밑천이자, 노동력의 일부로 보았으니 말이다.
시작부터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룬다티 로이의 빼어난 자기성장담 '어머니 내게 오시네'를 덮자마자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가 부커상 수상자로 결정되는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희귀한 경험을 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던 것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작가는 엄마 로이 여사를, 무척 단순하면서 입체적 인간으로 그린다. 애증의 대상이고 존경해 마지않으면서도 닮고 싶지 않은, 그러나 어느새 한 인간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를 솔직히 드러낸다. 누가 뭐래도, 어떤 상황과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엄마의 딸이니까.
내 아버지는 많이 배운 분은 아니었으나 자식 공부만큼은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겼다.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언제나 아버지의 원칙에 따라야 했다. 오직 공부였다. 온화하면서도 엄격하고 단호한 분이었으니, 외려 무채색인 시절에 살았던 게 다행일 정도였다.
때론 아버지가 (상상을 초월하는 결정을 할 때면) 가족보다 교회를 더 위하는 건 아닐까, 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제자들에게 빛을 비추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려면 우리-나와 오빠-가 어둠을 흡수해야"(74쪽) 그러니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린 건 당연했다. 작가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아룬다티 로이는 그런 선물에 감사하고 가까이 두고 지도를 그리면서 비밀이 드러날 때까지 응시하는 법을 배운다. 결국 그것이 자유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와 다르게 살고자 한들, 부모 그림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부모의 자장 안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오기 마련. 작가 역시 그랬나 보다.
"갈림길에서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마다 내가 받은 교육, 내가 속한 계층,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보호해주었고,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없는 선택지들을 제공해주었다."(146쪽)
얄팍한 내 글재주로는 감흥을 다 담기 힘든 책이 있다. '어머니 내게 오시네'가 그랬다. 비가 쏟아지는 노천광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기분이 이럴까. 엄마 로이 여사가 없는 세상에서의 첫날 밤, 좌표 없이 우주를 떠도는 기분이라던 작가는 "나는 그녀를 패배시키고 싶지 않았고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늘 여왕처럼 퇴장하길 바라왔다."(439쪽)며 헌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