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현 대구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재명 정부의 대표 교육공약이었다. 지방에 9개 대학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당장은'3개 만들기'로 축소됐고, 지난 2일에 부산대·전남대·충남대 3개 대학이 '서울대 후보'로 선정됐다. 연구중심대학 지역육성을 통한 대학서열체제 극복과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취지가 거의 무색해 보인다. 예산만 증액됐지 과거에 하던 국립대학육성사업의 틀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애초 김종영 교수의 원안은 3~4조를 증액하는 것이고 예산규모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결국 3개 대학을 위한 추가 예산은 학교당 700억으로 총 2천100억에 불과하여 3~4조의 4~5% 수준이다. 어쨌든 3개 대학에 들어가면 연 1천억을 기존보다 추가로 받지만, 그에 들지 못하는 대학들은 300~400억 추가에 만족해야 한다. 3개 대학은 연 700억 정도를 더 받는 것이므로, 위계적 분할 구도가 형성됐다. 나머지 대학들은 이제 학교가 하위 서열로 내려간다는 위기감이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예산 축소를 단순한 재정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한국 고등교육 정책을 오래 지배해온 '선택과 집중' 논리의 끈질긴 반복이다. '혁신'이라고 쓰지만 '전통'의 반복인 것이다. 이 전통이란, 승자에게 몰아주는 습관의 다른 말이다. 경쟁을 통한 '선택과 집중' 논리는 이제 고등교육 정책의 고질적 병폐로 보일 지경이다. 정말 이 논리가 효율적인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대학이라는 그릇에 자원(주로 재정)을 부으면 학문생태계가 살아날까?" 이에 대해 인문사회 기초학문의 시각에서 한 번 검토해보고 싶다.
첫째, 대학에 투입된 돈은 학문 생산의 밑바닥에 도달하지 않는다. 소위 '낙수효과'가 사라진 듯하다. 2026년 R&D 예산이 35.3조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교육부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도 9천억 원 증액되었지만, 전체 R&D에서 인문사회 계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2%에서 올해 0.93%로 오히려 1%선이 무너졌다. 2027년 정부예산안도 증액은 되었지만 역시 1%미만이다. 증액된 예산은 AI를 비롯한 기술공학 분야로 흘러갔다. 서울대 후보 3개 대학들도 주로 이 분야의 예산이 증액된 것이다. 이미 대학은 논문수나 QS순위 같은 이공계 기준의 성과지표에 따라 학교예산을 배분하고 있다.
둘째, 대학은 꽤 오랫동안 오히려 기초학문을 밖으로 밀어내왔다. 지난 20여 년간 인문사회 학과들은 폐과와 통폐합으로 사라졌다. 도종환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2019~2021년 학과 통폐합 700건 중 비수도권이 539건(77%)이고 인문사회계열이 284건으로 가장 많았다. 1999~2024년 독일어 관련 학과는 69개에서 30개로, 철학과는 74→47개로 줄었다. 심지어 안동 경국대는 '인문학 특성화'로 글로컬(GLOCAL) 사업에 선정되고도 정작 인문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융합'이라는 명목으로 과를 폐과하고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학과가 사라지면 전임교원 충원이 멈추고, 학문 생산 인력도 함께 줄어든다. 이런 대학 풍토에서 돈을 더 투입한다고 그 돈이 기초학문으로 흘러갈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셋째, 살아남은 연구자들조차 대학 내부에서 '반값 교수'로 소진된다. 지방 사립대 전임교원의 30~40%를 차지하는 비정년트랙 교수들은 정년트랙 교수의 반값 이하의 인건비로 힘겹게 생활하므로 연구를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학과가 아닌 교양으로, 학문이 아닌 '교양지식'으로 인문사회과학이 격하되는 사이, 학문을 이어갈 후속세대는 이 같은 암울한 미래를 직감하고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다. 이렇게 뿌리에 물이 닿지 않으면서, 학술생태계가 고사(枯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3개로 축소되든 10개로 확장되든, 그것이 선택과 집중의 경쟁력 논리에 따라 일부 대학만 지원한다면, 인문사회 기초학문의 위기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 같다. 이미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학이라는 그릇을 고집하는 대신, 학문을 담을 '새그릇'을 대학 바깥에도 마련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학이 기초학문을 밀어내는 주체인 이상, 대학에만 학술생태계를 맡길 수 없다. 현재 연구재단에서 운영하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현재 A유형 연4천, B유형 연2천 합쳐 약 5천명 지원, 예산 총 1천억원 정도)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비수도권 전역에 5곳 이상의 '지역 인문사회연구원'을 설치하고, 1인 연구실을 제공하고 국가가 직접 고용하자. 프랑스의 경우 CNRS 산하 인문사회연구원(INSHS)를 통해 1천600여명의 연구자를 대학 외부에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음을 참고할 수 있다.
한국에도 자연과학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대전의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있다. 인문사회 버전이 없을 이유가 없다. 이 때 '개인' 단위의 지원이 기초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이나 연구단 같은 '조직'에 예산을 주면 그 돈은 건물과 기자재로 흡수된다. 그래서 현재 연구재단의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처럼 개인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학문후속세대에게 가장 호응이 높다. 연구자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연구 주제에 전념할 수 있고, 행정이 아니라 연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균형 효과도 있다. 지역 인문사회연구원에서 연구하는 국가박사들에게 비수도권 정주를 조건으로 정주 기간에 따라 급여를 순차적으로 인상하고 1인 연구실에 더해 주거까지 제공한다면,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지역균형발전, 지역인재육성 방향과도 부합한다. 주요 지역에 1천여명의 인문사회 박사들이 거주하면서 활동한다면, 단지 대학생이 활동하는 것과는 다른 문화적 사회적 파급효과를 가질 것이다.
산업 인재만이 인재가 아니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경제적 박탈이 주된 원인이지만 '문화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지역 대학의 사회학과가 사라지면 지역 문제를 탐구할 사회문화적 인재도 함께 사라진다. 인문사회 연구자가 각 지역에 정주하는 것은, 조선의 서원(書院)이 그러했듯 지역 문화와 더불어 시민의 인문적 역량을 떠받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지역산업 살리기 논리에 편중된 기존 앵커체제, 글로컬, 앵커(구 라이즈)의 논리를 인문사회 학술 지원을 통해 '지역 문화 인프라'의 관점으로 반드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지역 문화 인프라 구축은 지역 학술생태계의 고사를 막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