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이제 발음까지 뭉개지는 한국어의 하향 약진

입력 2026-08-28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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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라디오에서 좋아했던 그러나 제목은 잊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기다렸지만 야속하게도 제목은 말해주지 않았다. 노래 틀기 전 소개에서 알려준 모양이다. 요즘 세상에 프로그램 진행자 이름만 알면 그런 거 찾아보는 건 일도 아니다. 프로그램 말미에서 진행자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홍수연이었습니다." 바로 인터넷에 검색했지만 아나운서 중에 그런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아나운서를 빼고 찾았더니 별 희한한 직종의 각종 홍수연만 쏟아져 나올 뿐 역시 아나운서는 없었다(대신 가수 춘자의 본명이 홍수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나름 소득). 스크롤을 내리다가 인물검색 대신 글 검색 중 홍수연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글은 강상헌이란 분의 연재 칼럼 중 '베토벤의 미녀 수집' 중 일부였다.

읽다가 너무 생각이 같아서 놀라고 고마웠다. 고마운 이유는 그 분이 문제 여성의 실명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그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홍 땡땡이나 홍00 같은 식으로 써서 독자들의 흥미를 심하게 반감시켰을 것이다.

◇이를테면, 제 이름은 남정으임니다, 같은

글 시작은 "진행자의 불안정한 '아에이오우' 발음, 우스개일까?"였다. 처음부터 나와 생각이 데깔꼬마니라 바로 감탄 한 발 폭발. 강상헌 선생이 이어간 내용을 보자. 운전 중 KBS 라디오의 고전음악 방송 클래식FM을 들었는데 여성 진행자가 "베토벤이 미녀를 수집했다."는 말과 함께 사연을 소개했다는 거다.

베토벤이 카사노바도 아니고 뭔 수집? 수집은커녕 한 명도 제대로 적중시키지 못한 게 베토벤의 연애사 아니던가. 그런데 알고 보니 미녀가 아니라 '민요(民謠)'를 말한 것이었다. 강상헌 선생은 '민요'가 '미녀'로 들린 것은 소릿값이 [미뇨]보다는 [미녀]에 가까워서 그랬나보다 추측했다.

그 다음이 압권이다. 강상헌 선생도 KBS의 아나운서라는 그 진행자가 자신의 이름을 '홍수연'이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해서 선생도 베토벤의 그 민요 음악이 궁금해 프로그램 홈피를 찾았는데 곡목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연하다. 강상헌 선생과 내가 들었던 그 진행자의 이름은 '홍수연'이 아니라 '홍소연'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글을 옮기면 이렇다. "아마 그는 [홍소연]이라고 자기 이름을 발화(發話)했을 터이나, (필자 같은) 어떤 이들의 귀에는 [홍수연]으로 들렸을 수도 있었겠다는 짐작이다." 내 귀만 고장 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입에 연필 물고 말하기 연습이라도 해야 할 판

이제 실험을 해 볼 차례다. '오'와 '우'의 혼음이 가능한지 몇 번이고 해봤지만 실패했다. '에'와 '외'와 '애'도 아니고 오와 우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가 심히 불가다. 강상헌 선생은 "아나운서 등 특히 '말(소리)'로 세상에 기여하는 이들은 지금 바로 자신의 '아에이오우' 즉 모음들의 발음을 입 모양과 함께 몸소 거울 보며 점검할 일이다. 좋은 사례로 CNN이나 BBC 같은 외국 방송의 진행자들 발화(發話)와 입모습도 살펴야 한다."며 교양 있게 글을 마치셨지만 품성이 그에 못 미치는 나는 조금 다른 결론이다. (될 때까지) 무조건 재교육이다.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 하실 수 있겠지만 그 여성의 직업은 아나운서다. 하는 게 맞고 옳다.

◇자막이 없으면 이제 알아듣기도 어려운 한국어

한국어가 글과 말에서 망가지는 얘기는 여러 번 했다. 도대체 한국인의, 한국인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를 외국인은 모국어로 어떻게 번역할까 같은 글도 쓴 기억이다. 그런데 이제 발음까지도 문제인 것이다. 홍소연을 예를 들었지만 그 분만 문제가 아니다. 총체적으로 한국인의 한국어 발음은 엉망진창으로 어미의 "~요"를 "~여"로 발음하는 건 기본이고 입을 '벌리고' 말을 하는 대신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사람도 흔하다.

우리가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원어민 말소리를 혀에 박힐 때까지 따라하는 이유는 그 발음이 우리말에 없고 들리는 그대로 따라 해야 정확하게 의미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분들의 방송을 듣고 한국어를 배운다면 끝이 좋을 리 없다. 글·말·발음 세 가지가 경쟁하듯 망가지는 한국어,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