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발표한 김동인의 단편소설 '붉은 산'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만주로 터전을 옮긴 실향민들의 피폐한 삶이 배경이다. 소설의 절정은 '삵'이라는 별명을 가진 조선인이 만주인 지주의 횡포에 항변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장면이다. 그는 황량한 만주 벌판을 가리키며 '붉은 산'과 '흰 옷'이 그립다고 한다. '붉은 산'과 '흰 옷'은 고국의 산하와 민족을 비유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만주 이주민의 삶이란 그랬다. 생존을 위해 만주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빈곤과 착취가 반복되는 나그네의 삶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만주는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망명과 생존의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던 식민지 민중의 비극성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낸 공간이기도 했다. '붉은 산'도 만주에서 살아가던 유랑민의 고통을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에 앞선 1920년대 최서해의 대표작인 단편소설 '탈출기'와 '홍염'도 만주 조선인의 비참한 현실과 저항의식을 그린 작품이다. 만주로 떠난 식민지 농민의 삶이란 유랑과 좌절 그리고 빈곤과 절망의 점철이었다. 일제와 만주인 지주의 착취에 따른 분노는 처절한 파멸과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1940년대 만주 이주민의 망향가 '찔레꽃'의 색깔도 그래서 붉었던 것일까.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앉아 찍은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찔레꽃'은 망국과 실향의 한을 안고 북녘 만주 땅에서 타향살이를 하던 유랑민들의 애절한 향수심을 붉게 피워올린 노래이다.
우리 민족에게 찔레꽃은 궁핍하던 시절 4,5월 보릿고개에 덤불지어 피던 꽃이어서 더욱 애틋하다. 새순 줄기를 꺾어 밑둥부터 껍질을 벗겨 먹으며 그 아련한 단맛으로 허기를 달래던 시린 추억의 꽃이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찔레꽃은 이렇게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하물며 이국땅 만주에서 살아가던 망국민과 실향민들의 찔레꽃에 대한 상념은 오죽했을까.
다만 노랫말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찔레꽃의 색깔이다. 일반적으로 흰색인 찔레꽃을 왜 붉다고 했을까. 일편단심(一片丹心) 망향의식의 발로였을까. '찔레꽃'은 작사가 김영일과 작곡가 김교성이 북간도 순회공연 중에 만든 백난아의 노래이다. 만주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동포의 애환을 담은 가요였다. 가시가 있는 붉은 꽃을 그냥 찔레꽃이라 불렀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였을까.
찔레는 애잔하고 처연한 한국인의 정서를 머금고 있다. 가수 장사익의 '찔레꽃'과 이연실의 '찔레꽃'을 보더라도 그렇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그렇다. 장사익의 '찔레꽃'은 가난한 자신을 닮아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꽃'이다. 그래서 울었던 것이다.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이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이연실의 '찔레꽃'도 애처롭기 그지없다. 일제강점기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은 KBS '가요무대'에서 가장 많은 신청이 들어온 곡 중의 하나이다. 망국과 분단, 전쟁과 실향 그리고 도시화와 이촌향도의 물결 속에서 한국인은 '찔레꽃'을 끊임없이 소환한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