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뒤집힌 형상, 뒤집힌 회화 ― 게오르크 바젤리츠

입력 2026-08-28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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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바젤리츠, 《거꾸로… 오렌지를 먹는 사람(IX)》, 1981년
게오르크 바젤리츠, 《거꾸로… 오렌지를 먹는 사람(IX)》, 1981년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는 독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특히 인물을 거꾸로 뒤집어 그리는 회화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등과 함께 독일 전후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 인물이다.

바젤리츠의 본명은 한스 게오르크 케른이다. 1938년 작센의 작은 마을 도이치바젤리츠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의 파괴를 경험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동독에서 성장했다. 1956년 동베를린 바이센제 미술대학에 입학했지만 '사회정치적 미성숙'과 '이념적 불성실'을 이유로 퇴학당했다. 이후 서베를린으로 건너가 공부를 이어갔으며, 1961년 고향 이름을 따 '게오르크 바젤리츠'라는 예명을 선택했다. 체제에서 밀려난 청년이 고향의 이름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세운 셈이다.

그가 독일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과정도 극적이었다. 1963년 첫 개인전에 선보인 《양동이 속의 큰 밤》과 《벌거벗은 남자》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압수됐다. 재판은 1965년까지 이어졌다. 이 소동으로 관람객이 몰리면서 무명 화가였던 바젤리츠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작품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바젤리츠의 그림에서 인간은 아름답거나 영웅적인 존재가 아니다. 몸은 뒤틀리고 잘리며 화면은 거친 붓질로 뒤덮인다. 1965~66년에 제작한 '영웅들' 연작에는 군인이나 방랑자를 닮은 거대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군복은 찢어지고 몸은 상처 입었으며, 인물은 황폐한 풍경 속에 무기력하게 서 있다. 승리와 권력을 상징하던 영웅이 패배와 상처를 지닌 반영웅으로 바뀐 것이다. 영웅적인 신체와 민족 신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나치 시대 이후, 그에게 순수한 영웅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1969년 바젤리츠의 회화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인물과 나무, 독수리 등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했다. 완성한 그림을 뒤집어 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대상을 뒤집힌 상태로 설정하고 그렸다. 나무가 바로 서 있으면 우리는 곧바로 "나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꾸로 놓이면 익숙한 인식이 흔들리고, 눈은 대상의 의미에서 형태와 색채, 화면 구성과 붓질로 이동한다.

따라서 그의 '뒤집기'는 단순한 기행이나 충격 효과가 아니다. 형상을 없애지 않으면서도 그 지배력을 약화해 그림 자체를 보게 하는 회화적 장치이다. 사람은 사람이면서 물감의 흔적이고, 나무는 나무이면서 붓질의 구조가 된다.

바젤리츠는 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미국 중심의 추상미술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형상을 그리되 뒤집고 왜곡하고 분절함으로써 구상과 추상 사이에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훗날 독일 신표현주의가 국제적으로 부상하는 토대가 됐다. 나무를 전기톱과 도끼로 거칠게 깎은 조각에서도 매끄러운 완성보다 제작 과정의 흔적과 상처를 드러냈다.

그가 평생 붙잡았던 질문은 "추상미술 이후에 구상회화는 어떻게 가능한가"였다. 그가 찾은 답은 형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낯설게 만드는 것이었다. 형상을 뒤집는 순간 익숙한 세계는 흔들리고, 관람객은 비로소 그림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된다.2026년 4월 바젤리츠는 88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