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행운도 따뜻한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어"
월 매출 30억 풍국공업사 대표, 큰 돈 벌어 나눔 실천
대구문학 통해 시인 등단, 국민훈장 석류장 받아
"아이고~~~ 말라꼬~~~ 인터뷰 꼭 해야 하나?"
인터뷰를 앞두고 손사래부터 친다. 하지만 이내 특유의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대구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옆집 아저씨'의 모습을 꼽으라면 단연 이 사람을 떠올릴 만하다. 늘 웃음이 묻어나는 얼굴에 푸근하고 소탈한 인상. 그러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이상의 굴곡과 나눔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이번 주 '털보기자'가 만난 주인공은 신홍식(72)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다.
지난해 6월에는 EBS와 E채널이 공동 제작한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 출연해 돈과 부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14일 대구 종로의 스타벅스 대구종로고택점에서 만난 신 회장은 칠순을 훌쩍 넘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물 흐르듯 가다 보면 어디론가 도달해 있습니다. 하하하.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한옥 스타벅스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나고 보니 노력도 있었지만 행운도 있었습니다. 그 행운이 따뜻한 마음 한구석에 있다가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오는 것 아닐까요."
◆'구미의 우사인 볼트'… 달리기로 이름 날린 소년
신 회장은 구미 선산에서 석재공장을 운영한 아버지 고 신현철 씨와 어머니 고 김옥순 씨의 4남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배운 것은 '부지런함'과 '사람을 챙기는 마음'이었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공장에 나가 인부들의 간식은 물론 담배까지 챙겼다. 자신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살피는 모습이 어린 신 회장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신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사람을 돕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어머니 역시 남편의 일을 묵묵히 뒷받침하면서 여섯 자녀를 정성껏 키운 '내조의 달인'이었다.
학창 시절 신 회장의 남다른 재능은 공부가 아니라 '달리기'였다.전교생이 3천 명에 달하는 초등학교에서 달리기 2등을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고, 경북도민체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육상 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일반전형으로 대구 능인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탓에 능인고를 거쳐 가야대학교 경영학과와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자신의 학창 시절을 두고는 "공부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다"며 웃었다.
군 복무는 국방부 직속 특수부대에서 했다. 이 시절 그는 "자본주의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돈과 경제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됐다. 후배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마산에서 몽고간장 총판을 운영하기도 했다. KODAK 필름에서 영업을 배웠으며, 큰누나의 남편이 운영하던 풍국면 공장 일을 돕기도 했다.
◆ 월급쟁이에서 '대구 TOP5 공업사' 대표로
젊은 시절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단칸방 셋방살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한동안 월급쟁이 생활을 이어갔다.그러나 그의 월급쟁이 인생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1990년대 초 컴퓨터 모니터를 제조하는 풍국공업사의 대표를 맡게 됐다. 당시 회사는 월 매출 3억 원에 이르는 규모였다.이후 약 20년 동안 공장을 운영하며 사업을 키웠고, 성공적인 사업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돈을 버는 데만 인생을 걸지는 않았다. 사업에서 얻은 성취를 바탕으로 재테크를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돈을 어떻게 더 벌 것인가'보다 '돈을 어떻게 의미 있게 쓸 것인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그의 삶에서 '나눔'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 시점이다.
◆ '대구의 쌀집 아저씨'
신 회장은 지역 문화예술을 돕는 문화메세나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성안빌딩 16층 전체를 매입해 지역 미술인들에게 무료로 임대하고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예술 작품을 사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예술가들이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다.
나눔은 문화예술에만 머물지 않았다.IMF 외환위기 때부터 시작한 쌀 배달은 어느덧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가정을 직접 찾아가 쌀을 전달했다. 그에게는 '대구의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대구 아너 소사이어티 5호 회원이라는 이력도 그의 나눔 행보를 보여준다.
신 회장은 자신의 기부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했다."어차피 있는 거 함께 나눠 쓰는 거죠." 이어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꽃은 기부와 나눔"이라고 강조했다.
방송에 출연했을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부자'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먹고 살 재산도 있지만, 마음만은 나보다 더 부자는 없을 겁니다." 돈의 액수보다 마음의 크기를 부의 기준으로 삼은 그의 대답에 시청자들은 따뜻한 웃음을 보냈다.
그는 '쌀 배달 아저씨'로 2017년 대한민국 자원봉사상 대상을 수상했고 국민훈장 석류장도 받았다.현재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으로서 지역의 나눔 문화를 이끌고 있다.
◆ 사업가에서 시인으로… '동심'을 쓰다
신 회장의 인생 2막은 사업과 나눔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그가 가장 아끼는 취미는 '동시 쓰기'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 아름다운 동심과 풍경으로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과 들판, 친구들과의 추억은 그의 시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그는 '대구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현재까지 '동시 발전소' 발행인을 맡고 있다. 대구포크페스티벌 이사장, (사)아트빌리지 대표, 혜암아동문학회 회장 등도 역임했다.
문학적 감수성은 집안의 영향도 컸다. 그의 조부는 탁청(濯淸) 신상덕 선생으로, 당시 지역에서 200여 명의 제자를 가르쳤던 한학자였다.
◆ 바둑·골프·그림… "잘 놀아야 건강하다"
바둑과 골프도 빼놓을 수 없는 인생 2막의 동반자다.바둑 실력은 5급 정도. 하지만 승패보다 지인들과 마주 앉아 수를 주고 받으며 나누는 대화를 더 즐긴다.물론 이겼을 때는 상대방을 살짝 놀리는 재미도 빼놓지 않는다.
골프는 보기 플레이 수준이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큰 부담 없이 즐기는 것이 그의 골프 철학이다. 자신 있게 내세우는 특기는 '벙커샷'. 멋진 서드샷으로 벙커를 탈출해 파 세이브를 만들어낸다.
"잘 놀아야 건강합니다. 인생은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가 말하는 건강한 노년의 비결이다.
신 회장의 또다른 취미는 그림 수집이다. 그의 빌라에는 그림 1천점이 보관되어 있다. 누가 보면 미술 재테크를 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그림을 모으는 이유는 돈을 벌고자 함이 아니다. 그는 "저는 사기만 했지 그림을 팔아본 적이 없다"며 "언제간 이 그림들과 예술품들을 대구시민들의 위해 무료로 전시하고 싶다"고 속내를 밝혔다.
아내 김명옥 여사에 대한 평생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았다. 당시 선을 봐서 결혼을 했는데, 첫 만남에 단꼬바지에 부지깽이를 들고 나타난 모습에 반했다고 회상했다. "저 모습 그대로 같이 살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실제 살아보니 더 없이 고맙고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