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불안·성과 압박·행정 부담…대학 구성원 모두 '소진'
교수 자살 생각 경험률 15.1%… 일반 성인의 2배 넘어
"구성원 각 특성 반영한 맞춤형 정신건강 지원 체계 구축해야"
#내년 졸업을 앞둔 지역 4년제 대학생 A씨는 "현재 인턴으로 일하는 곳의 열악한 처우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미래 고민 때문에 자취방에 돌아오면 집을 청소할 기력조차 없다"며 "친구들의 메시지에 답장할 에너지도 없어 심할 때는 2~3개월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지역 4년제 대학에서 17년째 재직 중인 교수 B씨는 "낮에는 강의와 행정 업무를 하고 연구와 국책사업 관련 업무는 대부분 퇴근 이후에 이어간다"며 "국책사업 계획서 제출이나 평가를 앞둔 시기에는 늦은 밤까지 일하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국책사업은 선정 전에는 준비 과정에서, 선정 이후에는 연구진 관리와 성과 압박으로 또 다른 스트레스가 시작된다"며 "최근 지방대의 대형 국책사업 참여가 늘면서 연구와 교육보다 사업 기획과 운영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지역 4년제 대학에서 13년째 근무 중인 직원 C씨는 "교육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실제 실행은 대부분 대학 몫이 된다"며 "글로컬대학,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사업에 이어 새로운 국책사업이 계속 생기지만 기존 업무는 그대로여서 직원들의 부담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은 두세 배로 늘었는데 조직과 시스템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으니 주변에는 병가를 내거나 우울증, 공황장애 치료를 받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며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조직이 부족해 현장의 피로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학생과 교수, 직원 모두가 이처럼 극심한 스트레스와 소진을 호소하는 가운데 대학 구성원들의 정신건강이 일반 성인보다 더 취약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는 지난달 10일 서울역 비즈허브 서울센터에서 '대학의 정신건강 지원 체계 구축 방향 모색'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대학의 정신건강 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윤명숙 전북대 대외취업부총장은 대학생과 직원, 교수 등 대학 구성원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정신건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반 4년제 대학의 대학생 824명, 대학 직원 408명, 대학 교수 3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대학 구성원 모두가 정신건강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은 우울과 스트레스, 자살 생각, 고위험 음주율 모두 일반 성인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여학생의 알코올 남용·의존 비율은 16.4%로 남학생(1.6%)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대학 직원 역시 모든 항목에서 일반 성인보다 높은 위험도를 보였으며, 대학 구성원 가운데 우울과 스트레스 수준이 가장 높고 삶의 질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수 집단도 상황은 심각했다. 자살 생각 경험률은 15.1%로 일반 성인(6.4%)의 두 배를 넘었고, 자살 시도율과 음주 관련 지표 역시 위험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살 생각 경험률은 대학생(7.9%)보다 교수(15.1%)와 직원(13.8%)에서 더 높았으며, 자살 시도율은 교수가 7.9%로 가장 높았다.
윤 부총장은 "대학 구성원 모두 정신건강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위험 양상은 집단별로 차이가 있다"며 "대학생과 직원, 교수 각각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 197개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대학들이 다양한 정신건강 지원 자원을 갖추고 있음에도 실제 이용률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의 상담 경험률은 15.3%에 그쳤고, 교수의 정신건강 프로그램 이용률은 6.1%에 불과했다.
강낙원 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장은 "대학생 마음건강 지원은 단순한 복지 서비스가 아니라 학생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보장하고 청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안정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정책의 핵심 과제"라며 "국가가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지원 기준을 마련하고 대학이 안정적으로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과 연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교수·직원 가운데 어느 한 집단이라도 심각한 소진 상태에 놓이면 건강한 교육환경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대학의 정신건강 정책은 학생 지원을 우선 강화하되 궁극적으로는 학생과 교수, 직원을 모두 아우르는 '대학 공동체 전체 접근(Whole University Approach)'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