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그림 한 점 없는 미술관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벽에는 캔버스도 걸려 있지 않고, 전시실에는 조각 하나 놓여 있지 않는 미술관 말이다. 만약 그런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벽면을 가득 채운 화려한 미디어 아트(Media Art)쯤을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나오시마(Naoshima)에서 배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하는 데시마(Deshima) 섬에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Nishizawa Ryue)와 예술가 나이토 레이(Rei Naito)가 설계한 데시마 미술관이 있다. 2010년 10월 문을 연 데시마 미술관은 빛, 바람, 물, 시간 등을 작품으로 들여놓은 파격적인 발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식 개관에 앞서 섬 주민들에게 먼저 공개했을 때만 해도 "미술관이라더니 그림이 하나도 없다"라는 당혹스러운 반응이 이어졌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낯섦은 자부심으로 바뀌었고, 이제 데시마 미술관은 섬을 가장 잘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다.
데시마에 도착한 후 셔틀버스를 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자전거로 가보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10여 분 뒤 미술관 정류소에 내리자 길은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듯 이어졌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길은 사라지고 시야 끝에는 온통 세토내해(Seto Inland Sea)가 가득했다. 바다를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그 길 오른편으로 마치 하얀 비닐하우스처럼 보이는 건물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시골 초록에 폭 둘러싸인 그 건물이 바로 데시마 미술관이었다.
예약한 시간에 티켓을 확인하고 산책하면서 정해진 길로 따라갔다. 무성한 토끼풀 내음이 바람 사이로 날아들었다. 세토내해에 누워있는 긴 직선 구조물을 내려다보면서 예술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가느다란 방파제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흐리고 있었다. 데시마 섬은 그런 곳이었다.
우거진 숲을 빠져나오면 거대한 콘크리트 입구가 입을 벌리며 나타났다. 밖에서는 오직 입구만 보이는 방식이어서 그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높이 4.3m에 기둥이 하나도 없는 두꺼비 집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로 들어서자 엄청난 고요가 밀려왔다. 천장에 뚫린 두 개의 타원형 구멍을 통해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첫 작품이었다. 그날따라 거친 바람 소리는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타원형 구멍에는 가느다란 실이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이었다. 실을 따라 내 눈동자가 바삐 움직일 때, 실에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전시 관리 요원이 말했다. 뻥 뚫린 구멍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둥근 하늘과 빛이 세 번째 작품이었다.
한참을 작품 속에 빠져있을 때, 양말이 축축해졌다. 미술관 바닥에 물방울이 굴러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방울은 바닥 곳곳의 아주 작은 구멍에서 샘물처럼 퐁퐁 솟아오르며 천천히 만들어졌다. 바닥의 아주 미세한 기울기와 중력, 공기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물방울은 서로 만나 하나가 되기도 하고 다시 갈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디어 아트처럼 같은 장면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내일 다시 살아야 할 인생의 순환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 물방울은 하나의 조형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처럼 보였다. 김창열(Kim Tschang-yeul) 화백이 수십 년 동안 캔버스 위에 머물게 했던 물방울이 이곳에서 중력을 따라 움직이고 서로 만나고 다시 흩어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빛, 물, 바람, 소리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이 미술관에서 물방울은 그 경험의 중심에 있는 가장 중요한 예술 작품이었다.
천장에 뚫린 거대한 원형의 하늘 아래로 바람이 쉼 없이 드나들었다. 숲을 흔드는 나뭇잎 소리는 건물 안으로 스며들어 메아리가 되었고, 보이지 않는 세토내해의 파도마저 공간 속을 흐르는 듯했다. 천장에 매달린 가느다란 실들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방향을 바꾸며 춤을 추었다. 마치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노는 모습 같았다. 예술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고, 스며들고, 변하면서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날 데시마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었다. 바람은 하늘과 나무, 그리고 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마케팅의 목적은 판매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데시마 미술관은 이 말을 가장 잘 증명하는 사례다. 자연과 건축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경험을 한 방문객들은 누구의 권유도 없이 "한 번쯤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며 자발적으로 입소문(Word of Mouth, WOM)을 낸다. 이제 마케팅은 광고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라는 점을 데시마 미술관은 보여 준다.
화장품 브랜드 이솝(Aesop) 역시 같은 방식으로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왔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대규모 광고와 획일적인 매장을 구축하는 동안, 이솝은 지역의 역사와 건축, 문화를 반영해 매장 하나하나를 새롭게 설계했다. 서울 매장은 서울의 문화와 건축을 담고, 도쿄 매장은 일본의 미학을, 파리 매장은 도시의 역사와 주변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매장을 복제하지 않고 지역의 맥락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 결과 매장은 브랜드의 철학을 체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브랜딩 전문가들이 이솝을 '공간을 디자인하는 브랜드'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솝은 제품보다 장소와 경험을 브랜드의 핵심 자산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를 기억하고 스스로 이야기하게 만든다.
4월 초 봄꽃이 필 무렵 군위 사유원(思惟園)을 다녀왔던 기억이 났다. 사유원 역시 건축을 통해 감각을 깨우는 공간이다. 숲길을 따라 걷다 건축을 만나게 하는 동선, 침묵과 여백 속에서 스스로 사유하게 만드는 방식은 데시마 미술관과 닮아 있었다. 특히 알바로 시자(Álvaro Siza)가 설계한 소요헌(逍遼軒)은 화려한 형태보다 빛과 침묵 그리고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데시마의 철학과 가장 가깝다. 승효상(Seung Hyo-sang)의 명정(瞑庭)도 있다. 좁은 통로를 지나 갑자기 열린 풍경과 마주하게 하는 공간 구성은 건축을 보는 대상이 아니라 체험하는 과정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데시마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사유원이 동양철학과 한국적 사유를 자연 속에 담아냈다면 데시마 미술관은 자연 현상 자체를 예술로 삼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데서 차이점이 있다. 나오시마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데시마는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얻은 시선은 섬에 남지 않았다. 그 바람 덕분에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후에 혼무라(Honmura) 지구의 이에 프로젝트(家 Project)를 찾아갔다. 오래된 민가를 예술로 되살린 공간들이었다. 카도야(Kadoya)에서는 집 안을 물로 채워놓았다. 물속에서 반복적으로 켜졌다가 지워지는 디지털 숫자가 시간을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하이샤(Haisha)에서는 폐 치과가 강렬한 색채의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들의 삶이 예술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을이었다.
이어 찾은 나오시마 신미술관(Naoshima New Museum of Art)은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최근 작품으로, 그의 건축 철학이 집약된 새로운 문화 공간이다. 외관은 일본 전통 석회 회반죽 마감인 싯쿠이(漆喰)를 사용해 부드러운 흰빛을 띠며, 섬 풍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이곳에서는 아시아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역동적인 전시를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차이궈창(Cai Guo-Qiang)의 '정면충돌(Head On)'은 99마리의 늑대들이 거대한 곡선을 그리며 유리 벽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거침없이 달려가면서도 결국 같은 벽에 부딪히는 모습은 집단의 맹목성과 반복되는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서도호(Do Ho Suh)의 '허브(Hub)'는 작가가 세계 여러 도시에서 살았던 집들을 반투명 천으로 연결한 작품이었다.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어지는 기억의 통로가 되었다. 은은한 색감의 집들은 신기루처럼 겹쳐 지고 사라지며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는 17세기 교토를 그린 '낙중낙외도(洛中洛外圖)'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일본의 전통 회화와 대중문화, 애니메이션적 상상력이 한 화면에서 충돌하면서도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작품마다 정답은 없었다. 대신 저마다 다른 질문을 건넸고 그 질문은 미술관을 나온 뒤에도 오래도록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나오시마 여행의 마지막은 지중미술관(Chichu Art Museum)이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건물 대부분을 땅속에 숨겨 자연의 풍경을 해치지 않는다. 입장 시간 전까지 정원을 먼저 걸었다. 모네가 사랑했던 지베르니(Giverny)를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빗방울이 연못 위에 떨어지고 수면은 흐린 하늘과 나무 그림자를 천천히 흔들었다. 선명하지 않은 색들은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는 선명한 것만 아름답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흐릿함 속에서도 색을 발견한다. 노안(老眼)으로 세상이 조금씩 부드럽게 번져 보이는 지금, 나는 비로소 모네의 그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기 전부터 이미 그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미술관 안에는 조명 없이 자연광으로만 감상하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 다섯 점과, 금박을 입힌 거대한 조각으로 공간을 채운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작품, 그리고 빛으로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바꾸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오픈 필드(Open Field)'와 '오픈 스카이(Open Sky)'가 자리하고 있다. 작품들은 해의 위치와 날씨에 따라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흐린 하늘은 그림을 환하게 비추지는 못했지만, 대신 빗 빛 속의 수련은 더욱 고요하고 깊어 보였다. 비와 그림은 같은 호흡으로 서로를 완성하고 있었다.
나오시마를 떠나 다카마쓰(Takamatsu)로 향하는 배 위에서 데시마 미술관을 떠올렸다. 그림 한 점 없는 미술관을 이상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곳을 섬의 자부심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술은 벽에 걸린 그림만이 아니었다. 바람과 빛, 물방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까지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이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