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 사회부 기자
지난달 29일 고교 야구대회에서 배재고가 광주일고를 상대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스타벅스 응원가'를 외쳐 논란이 일었다. 당시 배재고 학생들의 모습이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전국대회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논란이 커지자 배재고 야구부와 임직원은 지난 6일 광주일고를 찾아 공식 사과하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튿날 광주일고가 "배재고 학생들이 반성을 계기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는 입장을 밝히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현재 배재고는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이고, 오는 20일 결과가 나온다.
이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히 갈린다. 아직 학생인데 사회적 낙인과 징계 처분은 너무 과도한 게 아니냐는 입장과, 지역의 아픈 역사를 조롱하는 일은 명백한 잘못이므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6개월 출전정지라는 처벌은 프로야구 진출과 대입을 앞둔 학생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일부 학생들의 일탈을 넘어 교육 현장에 일상화된 '혐오 표현'에 있다. 학교 현장에는 정치인과 역사적 인물의 죽음을 조롱하거나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차별·비하하는 혐오 표현이 만연해 있다. 전교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는 전체의 89.3%에 달한다. 이번 배재고 논란은 학생들 사이에 확산된 혐오 놀이 현상이 외부로 나타난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학생들의 일상화된 혐오 문화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어른 사회'가 있다. 정치권의 극단적인 진영 논리부터 온라인 공간의 조롱·혐오 문화까지. 어른들의 자극적인 언어가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이를 접한 학생들은 무비판적으로 따라 배우게 된다. 물론 학생들 대부분은 성인처럼 특정 집단을 비하하거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래 문화 속에서 재미나 유행처럼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상을 단순 유행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언어의 중요성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언어가 인간의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지금은 단순한 놀이에 불과하더라도 특정 대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진 채 성인이 되면 그러한 인식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어린 시절 조롱의 대상으로 여겼던 사람들을 성인이 된 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존중하기는 쉽지 않다.
안타까운 점은 이번 논란이 학생들의 역사 인식과 혐오 표현이라는 본질보다는 정치적 진영 대결에 더 초점이 맞춰져 버린 상황이다. 사건 이후 배재고 앞에는 "극우 세뇌개를 박멸하자" 등 사건을 비판하는 근조 화환과 이에 대한 '맞불' 화환이 쇄도했다. 어른들의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 일이 다시 어른들의 진영 대결 속에서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는 사이 학생들의 교육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또다시 '우리 편'과 '저쪽 편'만 남았다. 학교 앞에 줄지어진 100여 개의 화환을 본 학생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학생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창을 흐리는 어른이 아니라, 그 창을 깨끗이 닦아주는 지혜롭고 현명한 어른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