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문화특집부 차장
160일. 일제강점기 대구경북 출신 70여 명을 포함해 조선인 136명이 희생된 일본 조세이(장생) 탄광에서 발견된 유해의 DNA 감정을 위한 시료가 최근 국내로 반입됐다. 160일은, 앞서 지난 1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감정을 추진키로 합의한 뒤 지금껏 흐른 시간이다.
언뜻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희망 고문이 될 수도 있다.
조세이 탄광에서 수몰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처음으로 발견된 건 10개월 전인 지난해 8월이었다. 바꿔 말하면 10개월이 지나도록 DNA 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마저도 지난 5월 답방 형식으로 경북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이뤄진 것이다. 결국 정상회담 첫 합의 이후 4개월 동안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DNA 감정을 목을 빼고 기다리던 유족과 시민단체는 최근 시료가 국내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일본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이런 이유로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고 발생 84년 만에 희생자 신원 확인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언급 없이 군사작전하듯 모든 과정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이런 모습은, 무언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일례로 정부가 적극적이었다면, 시료 확보 전이라도 희생자 유족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어야 마땅했다. 유족 측 DNA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희생자 DNA 감정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소식은 없었다.
두 차례 정상회담의 내용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핵심은 '희생자 유해 DNA 감정 합의'다. 수몰된 유해 전체에 대한 공동 '발굴'이 아니라, 양국 민간단체가 이미 발굴한 일부 유해에 대한 '유전자 검사에 협력'한다는 것이다. 한일 양국은 DNA 감정 대행 기관이 아니다. 물론 작은 진전이라도 의미가 없진 않지만, 굵직한 과거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지금껏 유해 발굴은 한일의 민간 차원에서 진행돼 왔다. 이 과정에서 지난 2월엔 도움을 요청받고 자원한 대만인 잠수사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수중 수색 작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일본 정부는 전쟁을 위한 필요에 의해 노동자를 강제 동원했고, 우리 정부는 나라를 빼았겼기에 국민을 지켜 주지 못했다. 이런 책임 의식에 공감한다면 양국은 정부 차원에서 희생자 유골을 수습하겠다고 해야 마땅하다.
2014년 세월호 침몰 3개월 뒤, 네덜란드에서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비행기가 추락한 일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친러 반군이 쏜 미사일에 격추돼 300명 가까이 사망했는데, 탑승객 대부분은 네덜란드인이었다. 수습된 시신이 돌아왔을 때 네덜란드 국왕과 내각 전체가 공항에 나가서 유족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줬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인명이 희생됐는데 10년 넘게 가느냐 국민적 애도 속에 끝나느냐는 죽음 직후에 얼마나 예우를 받았느냐의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해를 실은 차량 행렬을 위해 교통을 통제했을 때 네덜란드 시민들은 길을 막았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연도에서 꽃을 던지며 애도를 표했다. 사람의 죽음 앞에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게 국가의 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