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8년 만에 자산 60% '증발'", "金여사 심경은…'화무십일홍', 꽃도 권세도 떨어졌다.", "홍준표 '이재명 정권…화무십일홍'".
한 시절이 힘을 잃을 땐 늘 '화무십일홍'이란 다섯 글자가 고개를 든다. 으레 그 뒤엔 "권불십년"(權不十年,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한다)이란 말도 따라붙는다. 그렇다. 부귀영화의 몰락은 붉은 꽃잎이 지듯 슬픈 화려함이다. 다산 정약용이 말했듯, 호화롭고 뜨끈하게 누리는 '열복(熱福)'의 시절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맑게 고요히 누리는 청복(淸福)의 고귀함을 살피지 못한다. 칼자루를 쥐었을 땐 그게 전부인 줄 알건만, 착각하지 마라. 그 손도 잘릴 때가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꽃 화, 없을 무, 열 십, 날 일, 붉을 홍"으로 "꽃은 열흘 붉은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권력의 호시절, 인생의 청춘은 '잠시, 잠깐'임을 풍자할 때 쓰는 성어이다. 중국, 한국, 일본에서 인생과 권력, 사랑과 부귀영화의 무상함을 언급할 때 써왔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남송의 시인 양만리(楊萬里, 1127~1206)가 지은 시 '납전월계(臘前月季)' 즉 '섣달 전 월계화'라는 시에서다. '납'은 '섣달'의 뜻이다. 양만리는 붉은 꽃 '월계화'를 감상하면서, "대부분 꽃은 열흘 동안 붉은 것이 없다지만 이 꽃만은 그렇지 않다"라고 했다. "지도화무십일홍"(只道花無十日紅: 다만 열흘 붉은 꽃 없다고 생각했는데), "차화무일무춘풍"(此花無日無春風: 이 꽃은 햇볕도 봄바람도 없이 피었네).
이어서, 양만리는 '자미화(紫薇花)'라는 시에서 화무십일홍과 같은 의미의 '화무홍십일'을 읊었다. 즉 "수도화무홍십일"(誰道花無紅十日: 누가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했던가), "자미장방반년화"(紫薇長放半年花: 자미화는 반년이나 오래 꽃을 피우는데). 자미화는 '배롱나무=목백일홍'이다. 이 꽃이 100일 동안 핀다는 것은, 한 번 피어 백일동안 버티는 게 아니라 피고 지고를 이어가서 늘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한편, 비슷한 맥락의 '화무백일홍'이란 말이 원대 양문규(楊文奎)가 쓴 『아녀단원(兒女團圓)』의 설명 부분 「설자(楔子)」의 첫머리에 나온다. "인무천일호"(人無千日好: 사람은 천일이나 좋아하는 이 없으며),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 꽃은 백일동안 붉은 게 없다)". 같은 구절이 『수호전』 제22회에서도 보인다.
화려한 시절은 늘 붉게 피었다 진다. "화무십일홍 격으로 그 많든 재산이 안개같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그 뒤 그는 어디가 있는지 지금은 소식조차 아는 이가 없다."(『삼천리』제7권 제8호/1935.9.1.) 부귀영화를 잃으면, 그 사람도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 버린다.
찬란했던 순간이 꽃잎 지듯 우수수 떨어져 버렸을 때, 휙 지나간 무상함 그 기억마저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일상의 발코니에서 해묵은 누구나의 모습으로 몸을 구부리고 늘 살아 있다.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명상'이란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보라, 사라진 「세월」이/해묵은 옷을 입고 하늘의 발코니 위로 몸을 구부리는 것을."
이렇듯, 우리 마음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유행가가 있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인생은 일장의 춘몽 둥글둥글 살아나가자." 현세주의자의 찌질한 넋두리처럼 들릴지 모르나 "해도 달도 차면 기운다(日月盈昃)". 이런 평범한 말씀이 시대를 초월한 오래된 법문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