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전병서] AI 메모리 대호황시대 칼날을 피하는 지혜

입력 2026-08-03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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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AI시대의 메모리 호황은 지금까지 알던 것과 다르다. 과거의 메모리 사이클은 단순했다. PC가 팔리면 D램 가격이 오르고, 스마트폰이 팔리면 낸드가격이 오르고, 경기가 꺾이면 둘 다 떨어졌다.

그런데 AI시대에 그 시계는 부서졌다. 지금의 메모리 수요는 소비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챗GPT 하나를 돌리려면 HBM이 달린 H100이 수백 개 필요하고, 그 H100이 들어가는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아마존은 연간 2200억 달러를 쏟아붓는다. 수요의 주인이 수십억 개인의 손가락에서 수십 개 빅테크 이사회의 손가락으로 바뀐 것이다. 결정권자의 숫자가 적을수록, 단 하나의 실망이 시장 전체를 뒤흔든다는 사실이 이 시대 투자의 핵심 리스크다.

지금 반도체산업을 움직이는 힘은 다섯 가지다. AI·클라우드 수요, 반도체 공급·기술 주도권, 지정학과 수출통제, 가격 주기, 그리고 글로벌 자본과 레버리지다. 그런데 한국이 쥔 리모컨은 하나 뿐이다. 공급·기술 주도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HBM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이 두 회사가 없으면 오늘 밤 챗GPT도 없고, 내일 아침 AWS도 없다. 대한민국이 인류 AI 문명의 핵심 부품을 독점 공급하는 나라라는 사실 앞에서 애국심이 끓어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네 개의 리모컨은 한국 손에 없다. AI 수요는 뉴욕 빅테크 이사회가, 수출통제는 워싱턴 BIS가, 레버리지 청산은 런던과 홍콩의 헤지펀드가 결정한다. 삼성과 SK가 기술 최강자이면서 동시에 가격 수용자인 이 아이러니가 주가 변동성의 본질이다.

코스피는 2026년 1월 4309에서 6월 9385까지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상승의 90%를 이끌었다. 그러나 정점을 찍은 직후 7월 28일까지 코스피는 40% 폭락했다. 업황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에 영업이익률 76%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주가가 반 토막 나는 동안 이익은 역대 최대를 찍었다.

이것이 꼭대기의 구조다. 꼭대기에는 레버리지가 최고고, 낙관론이 최고고, 기대에 내재된 실망 가능성이 최고다. 결국 꼭대기에서는 새로운 악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호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싹트는 것뿐이다.

500억 달러의 레버리지 ETF와 120조 원의 외국인 오버웨이트가 이미 장전돼 있었다. 악재는 방아쇠였을 뿐이고, 총은 훨씬 전부터 준비돼 있었다. 7부 능선에서 숨이 차기 시작하면, 8부 능선 이후에서는 반드시 짐을 덜어야 한다.

승자의 법칙은 명확하다. 첫째, 분할 매수 분할 매도다. 바닥도 꼭대기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AI 수요의 체인을 따라가는 것이다. MS 애저와 AWS의 클라우드 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하면 메모리 사이클의 전환점이 3~6개월 앞에 있다는 신호다. 뉴욕 실적 시즌은 한국 메모리 주가의 가장 정직한 선행 지표다.

셋째, 레버리지를 경계해야 한다. 레버리지는 수익을 두 배로 만들지 않는다. 손실을 두 배로, 청산 속도를 열 배로 만든다. 풍선이 가장 아름답게 부풀어 오른 순간이 가장 터지기 쉬운 순간이다.

넷째, 지정학 달력을 읽을 필요가 있다. AI 금광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삽을 파는 자는 흥청거리는데, 정작 금을 캐낼 광부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골드러시는 소문일 뿐이다. AI 금광의 삽자루로 비유되는 메모리는 다르다. AI금광에서 금을 캐려는 광부는 분명히 있다. 다만 그 광부들이 얼마나 오래 캐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여의도가 아니라 뉴욕과 워싱턴이다.

MSCI 리뷰, 연준 FOMC, 빅테크 실적 시즌이 반복적으로 주가를 흔든다. 한국 반도체의 계절은 수원과 이천의 공장이 아니라 뉴욕 채권 시장과 워싱턴 수출통제 담당자의 온도가 결정한다.

AI시대 반도체의 호황은 단 한 번만 오는 것은 아니다. 올라간 것은 반드시 내려오고, 내려온 것은 다시 올라간다. 다음 파도를 타기 위해서, 지금 파도의 끝에서 살아남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