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방재직의 '좋은 날'

입력 2026-09-20 14: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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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나 사회부 기자

정두나 사회부 기자
정두나 사회부 기자

비도 눈도 태풍도 불지 않았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네팔과 중국의 경계 지역에서 굉음이 터지더니, 삽시간에 산이 무너졌다. 현장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건물 앞을 이리저리 오가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빙하가 무너지면서 하천을 따라 흘러간 토사는 민가와 도로, 각종 도시 기반 시설을 먹어 치웠다.

재난은 이제 공식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점점 더 포악한 얼굴을 하고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난다. 하나의 재난이 다른 재난으로 이어지고 피해 범위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지금의 우리는 재난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대응 체계도 그만큼 고도화됐을까. 대구 구·군 방재직 공무원들을 취재하면서 내놓은 답은 씁쓸했다. 재난 대응의 버팀목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재난 대응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항시 기상 상황을 확인하고 위험 지역을 점검한다. 재난이 닥치면 상황실에서 신고를 받고 현장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쏟아지는 민원 전화를 틈틈이 받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은 턱없이 적다. 대구시와 9개 구·군 가운데 상시 재난 상황실을 운영하는 곳은 7곳이지만 행정안전부가 권고한 '2인 1조 4교대' 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대구시와 중구뿐이었다. 육아휴직 등으로 공석이 된 방재직 자리도 있었지만 대체 인력은 채용되지 않았다.

정작 공무원들은 한숨을 쉬거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지 않았다. 업무가 너무 많은 데다 권한은 부족하고 지침은 늘어난다고 했다. 승진도 쉽지 않고 수당도 충분하지 않다. 한참 힘든 점을 쏟아내다가도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하루 더 근무하는 것도, 다른 직원들이 쉴 때 쉬지 못하는 것도 감당할 만하다고 웃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다른 직원이 그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책임을 피하면 결국 그 책임은 동료에게 돌아간다. 대응이 늦어지면 피해를 보는 것은 주민이다"고 되뇌었다.

보통 이런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 '헌신적이다'라고 말한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시스템이라면 박수만 칠 일은 아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결국 시스템의 부족한 부분까지 메우고 있어서다.

방재직의 일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난은 복잡해지고 대응해야 할 일은 늘어난다. 그때마다 '이번에도 누군가 더 일하겠지'라는 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 재난 대응체계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대책은 어렵지 않다. 방재 업무를 전담하는 상위 조직을 신설하고, 예방·대응·복구 업무를 나눠 담당해야 한다. 위험수당을 현실화하고 숙련 인력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인사 체계를 만드는 것도 재난 대비의 일부다. 그리고 책임을 나눠서 질 수 있도록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모두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방재직 공무원들에게 물었다. 밤을 새워 당직실을 지키고 곧바로 업무를 이어가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공무원들은 "괜찮다"고 했다. 한시도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만, 주민들이 무사하면 '좋은 날'이었다.

방재직의 좋은 날도 이제는 평범해야 한다. 한 사람이 1박 2일씩 근무하며 책임을 짊어지는 날이 아니라, 충분히 쉬고 정해진 근무를 마치는 날이어야 한다. 준비된 체계에 따라 안전이 유지되고, 그 안에서 방재직도 자신의 일상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