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40년 전 '정상사고'(正常事故)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Normal Accidents)라는 책을 통해서다. 그는 묻는다. 스리마일 원전이 왜 녹았는지, 챌린저 우주왕복선은 왜 산산조각이 났는지. 답은 의외였다. '누군가의 실수'가 아닌 '시스템의 본질' 때문이라고 했다. 개인의 실수나 도덕적 해이 등 '예외적인 사건'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시스템 자체가 이미 품고 있는 구조상 문제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정상적 결과'라는 것이다.
페로에 따르면 '정상사고'의 이론적 핵심인 '복잡성'과 '결합도'가 만나면 사고는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된다. 구성요소들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하나의 사고·실패가 다른 부분으로 전이(轉移)되는 '단단한 결합'이 만나는 시스템에서 사고는 시간문제로, 일어나지 않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복잡하다. 구성요소들이 심각하게 얽혀 있다. '친윤'도 있고, '절윤'도 있고, 부정선거론자도 있고, 당권파도 있고, 원내파도 있다. 부산에서 재기를 노리는 한동훈 전 대표와 친한파도 있다. 6·3 지방선거 공천 과정도 복잡했다.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다가 복귀했고 심각한 잡음을 일으킨 뒤 다시 사퇴하면서 본인이 출마했다. 상호작용 및 결합도 강력하고 즉각적이다. '절윤'을 결의하면 '윤 어게인'이 살아나고, '친윤'을 자르면 조직이 흔들린다. '친윤'을 중용하면 중도(中道)가 등을 돌린다.
페로는 '수습이 사고를 키운다'고도 했다. 스리마일 원전에서 운전원들이 안전을 위해 수동으로 끈 비상냉각장치가 노심(爐心)을 녹였다. 당 수습을 위한 절윤 결의는 분열을 가속화시켰고 절윤 번복은 내분을 폭발시켰다. 지선용 수습책 '공관위 전권 부여'는 권한 위임이 아니라 당 대표의 책임 회피 통로가 돼 도리어 공천 과정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럼 '누가 잘못했는가'. 페로의 말을 빌리자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예외적인 사건이 아닌 시스템의 구조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상적' 결과다. 장동혁 대표가 사퇴해도 사고는 나고, 한 전 대표가 살아 돌아와도 사고는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지선에서 참패할 경우 또 비대위원장이 등장하겠지만 시스템이 그대로면 사고는 또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구속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총선 등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시스템과 구조는 그대로였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지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지금 당을 해체하고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뒤 창당할 수는 없다. 기회는 이미 놓쳤다. 대통령 탄핵 후 새 대표가 취임했을 때 당명(黨名) 개정 추진이 아닌 시스템 리셋을 해야 했다. 당장은 응급조치를 해서라도 선거부터 치러야 한다. 상호작용과 결합도를 낮춰야 한다. '친윤' '반윤' 등 꼬리표를 붙여 즉각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결합을 끊어야 한다. 국힘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를 반기지 않고, 다른 색상의 유세복을 입는 것도 상호작용과 결합도를 낮추기 위한 본능적인 대처인지도 모르겠다.
페로는 책에서 두 가지 최종 처방을 내린다. 시스템을 폐기하거나 재설계하거나. 그 밖의 수습·개선·보완은 오히려 복잡성을 높여 다음 사고를 키울 뿐이라고 했다. 스스로 시스템을 고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외부의 힘'이 작동할 수 있다. 유권자다. 표로, 국민의 힘으로 국힘을 심판해 폐기(廢棄)시킬 수도 있음을 알고 정신 차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