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김성준] 달콤 위험한 현금 잔치

입력 2026-04-1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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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정부가 또다시 대규모 현금성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말, 이재명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약 4조 8,0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여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국민 약 3,580만 명에게 1인당 10만 원에서 최대 60만 원까지 지급할 방침이다. 지급액은 거주지역과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수도권 일반 가구에는 10만 원이 지급되며, 비수도권 및 인구감소지역 거주자, 그리고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진다. 정부는 이를 고유가·고물가에 따른 서민 부담 완화 조치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전 국민의 70%가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서 당초 내세웠던 선별지원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 정부의 이러한 기조는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2025년에도 '민생회복 소비쿠폰' 명목으로 13조 2,000억 원의 예산이 풀렸다. 당시 전 국민에게 15만 원, 이후 소득 하위 90%까지 기본 10만 원을 지급하며 선별적 집중 지원이라기보다는 대중적 현금 살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경기 침체나 감염병, 고유가 등 위기 시마다 반복되는 정부의 현금성 이전지출은 재정 지속가능성과 정책의 정밀성 측면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정부의 현금성 지원을 단순히 국민 복지 증진을 위한 선의로 해석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그 이면에는 정치인들의 철저한 이기적 동기가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정치인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으로 여기는 이는 드물다. 그들의 본질은 득표를 지상 과제로 삼는 정치 공학자이자 표를 사는 장사꾼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선거철마다 경기 부양의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도 이와 맞물려 있다. 감세 혜택이나 지역 개발 공약은 유권자에게 장밋빛 미래의 환상을 심어주지만 본질은 눈앞의 표를 위한 선심성 정책일 뿐이다.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이는 모든 행정 행위에 반드시 사회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진리를 간과한 결과이다. 심지어 권력 유지를 위해 경제 지표와 통계마저 왜곡하는 행태는 정치적 욕망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정부는 유독 현금성 지원을 남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장기 사업이나 제도 개선은 유권자가 그 실질적인 편익을 체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면 현금 지원은 결정과 동시에 통장에 숫자가 나오는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 유권자가 느끼는 효용이 즉각적이고 강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더욱이 정치권은 국가의 장기적 재정 건전성보다 당장의 선거 결과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미래 세대의 재원을 끌어다 현재의 표를 매수하려는 유혹에 취약하다. 일단 지원금 논의가 시작되면 유권자는 이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게 되며 이에 반대하거나 철회할 때 발생하는 상실감은 곧 표심 이탈로 이어진다. 결국 정치권은 표를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인 현금 지원 경쟁에 내몰리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현금 잔치'의 종착역은 그리 멀지 않다. 선거가 끝나면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물가 상승을 압박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파탄 난 재정을 정상화하려는 긴축 재정과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차례가 될 것이다. 결국 당장의 달콤한 지원금은 부메랑이 되어 국민 전체의 경제적 대가로 되돌아올 뿐이다.

이미 곳곳에서 선거철의 서막을 알리는 선심성 공약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표심을 사기 위해 재원 대책도 없이 던지는 정치적 약속은 민심을 현혹하는 전형적인 대중영합주의일 뿐이다. 이런 행태는 결국 국가 재정에 부담을 지우고 물가 상승의 기폭제가 될 위험이 크다. 매번 반복되는 정치 놀음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유권자의 현실에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깊어진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수준은 결국 유권자가 결정하는 법이다. 정치권의 수준을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국격에 걸맞은 의식을 갖추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