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每日來日] 기술의 사춘기와 약한 영웅, 제 3지대 AI 허브

입력 2026-04-07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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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 1,500만명을 넘기면서 오랜만에 극장가에 활기가 넘친다. 단종의 역할을 했던 박지훈이 일약 세계적 스타로 올라설 기세다. 그가 최근 스크린에서 주목받은 작품은 약자에게 폭력으로 돈을 갈취하는 사춘기 고교생들의 패거리 싸움에서 두 학교의 싸움을 멈추게 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약하지만 지혜로운 중재자 <약한영웅>이라는 청소년 드라마에서였다.

21세기 인류는 기후 위기와 함께 새로운 디지털 기술 문명의 전환기가 가져다 준 또 다른 위기에 들어섰다. 인공지능(AI), 자율 무기 체계,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은 경제와 군사 체계를 동시에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 혁명 이후 가장 급진적인 기술 변화로 평가된다. 특히 AI 기술은 빠른 확산성, 낮은 복제 비용, 자동화된 의사결정의 가능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기존의 군사 기술과 전혀 다른 새로운 위협을 만든다. 게다가 세계 질서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경쟁 속에서 무방비로 노출되며 재편되는 가운데, 20세기의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인식되었던 UN과 국제기구의 권위가 급격히 약화되면서 통제할 규범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핵무기 시대에는 소수의 핵보유 국가 사이에 공포의 균형을 이루며 상호 억지(mutual deterrence)가 작동했다. 그러나 AI 기반 무기 시스템은 기술 확산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행위자가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 질서의 불안정성을 대폭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간이 만든 AI가 어떤 윤리적 규범체계도 미처 갖추기 전에 실전에 배치되어 자율적 의사결정으로 인명살상 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이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전쟁이 바로 지금 벌어지는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은 흔히 기술의 사춘기(Adolescence of Technology)로 표현될 수 있다. 칼 세이건의 SF소설 '컨택트'를 영화로 만든 작품 속에서 여주인공 엘디(조지 포스터)가 외계인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 "당신들의 문명은 기술의 사춘기를 어떻게 넘기고 살아남았느냐?"에서 기인한 말이다. 이 시기는 기술이 성숙한 규범과 제도 없이 빠르게 발전함과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성을 안고 있어서 이 때를 안전하게 넘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강대 강으로 맞붙는 사춘기 폭력조직의 싸움이 일어날 때,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선한 품성의 '약한 영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폭력적 양극 경쟁 구조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새로운 협력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 공간이 바로 "제3지대(Third Zone)의 기술 주권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이 위태로운 테크노-소버린티(기술 주권)의 경쟁 속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AI,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조선, 철강, 방산 등 제조업 전 과정 공급망을 지닌 드문 나라다. 동시에 선제 침략의 역사가 없는 평화지향적 문화 강국으로서, 미중 사이에서의 균형자 역할을 모색할 수 있다.

때마침 정부의 노력으로 제네바에서 UN의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이주기구(IOM),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세계식량기구(WFP), 유엔개발계획(UNDP)의 노동, 고용, 개발, 협력의 주요 6개 기구가 연합하여 한국에 UN AI 허브 센터를 두기로 결정하고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이 UN과 연합하여 세계 평화와 공존을 바라는 싱가폴, 브라질, 튀르키에, 인도, 인도네시아, UAE 등 제 3지대 국가들과 함께 AI 기술 주권시대의 평화적 규범체계를 만들어가는 선도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 정부는 혼신의 노력을 다해 국가 전략을 짜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첫 발을 내딛는 AI 허브를 시작으로 21세기 사회를 주도하는 수많은 신생 국제기구들이 한반도에 장착되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마침내 남북이 평화경제로 다시 만나고 전쟁의 상징 DMZ가 국제 디지털 평화경제 플랫폼으로 탈바꿈되는 그 날을 꿈꾼다. DMZ 안에 디지털 북방항로 허브를 비롯 21세기형 국제 금융허브, AI 국제 보건기구, 국제 O2O 디지털 상업무역항, 디지털 공유대학 허브 등 전 세계 플랫폼 도시를 저궤도 위성망과 UAM으로 연결하는 그날, 세계 역사는 K-민주주의와 K-문화로 기술의 사춘기를 넘기고 세계 평화 시대를 다시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던 한국에 대하여 기록하고 배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