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선택보다 지키는 선택"…최유철, 의성에 박은 뿌리

입력 2026-03-20 09: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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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를 75일 앞두고 경북 의성군수 선거판이 들끓고 있다. 김주수 현 군수가 3선 제한에 걸리면서 무주공산이 된 자리를 놓고 국민의힘 안팎에서 다수의 후보가 이름을 올렸다.

청와대 행정관 출신, 현직 경북도의원, 전직 경찰서장까지 면면이 다양하다. 그 가운데 유독 하나의 숫자가 눈에 걸리는 인물이 있다. 전 의성군의회 의장 최유철이 의성이라는 땅 위에서 보낸 햇수다.

의성은 한때 인구 20만을 넘긴 중견 군이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안계평야를 중심으로 경북에서 손꼽히는 곡창지대였고, 읍내에는 사람이 넘쳤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이농과 고령화는 이 지역의 체력을 바닥까지 깎아냈다. 2023년 4월 의성군 인구는 마침내 5만 명 선이 무너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산출한 지방소멸위험지수 0.11.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사라질 수 있다는 진단이 붙은 곳이다.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45퍼센트를 넘고, 한 해 사망자가 출생아의 여섯 배에 달하는 구조적 데드크로스가 고착된 땅이다. 이런 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 법무사 사무소를 열고, 군의회 의장까지 지낸 사람이 이번에 군수에 도전한다. 밖에서 의성을 바꾸러 오는 인물들 사이에서, 안에서 의성을 지키며 살아온 인물의 궤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가 된다.

최유철의 첫 직장은 의성군청이었다. 이후 대구지방법원으로 옮겨 법원 행정 실무를 익혔다. 두 곳 모두 의성 생활권을 벗어나지 않는 거리였다. 공직을 접은 뒤 그가 내린 결정이 이후 30년의 방향을 정했다.

1994년 12월 의성읍 군청길에 법무사 사무소를 열었다. 올해로 개업 32년째, 간판은 같은 자리에 걸려 있다. 본인은 그 선택을 이렇게 설명한다. "형제들이 함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법무사 개업을 결심했습니다. 고향 의성에서 가족의 삶을 지키는 것이 곧 제 삶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배우자 조수현, 자녀 최혜리와 최민규까지 가족 전체가 의성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다. 대구나 서울로 사무소를 옮기는 편이 수입 면에서 합리적이었을 법무사가, 인구가 해마다 줄어드는 군 단위 읍내에서 서른두 해를 버텼다. "떠나는 선택보다 지키는 선택이 더 가치 있다고 믿었기에 의성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이다.

의성읍 법무사 사무소에 들고 온 서류 뭉치의 주인은 대부분 이 지역의 농업인과 노인이었다. 농지 매매에 따른 소유권 이전,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의 상속 문제, 빚에 쫓기는 자녀 때문에 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어머니의 사연. 법률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 주민들의 삶이 매일 그의 책상 위에 올라왔다.

실제로 그가 수임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남편 사별 후 자녀들이 상속분을 어머니에게 양보했는데 채무가 있는 아들의 채권자가 이를 사해행위로 소송을 건 사안이었다.

최유철은 대법원 판례와 정황 증거를 들어 어머니가 선의의 수익자임을 주장했고,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50년 혼인 생활의 실질적 기여, 다른 자녀까지 동참한 상속 포기의 진정성, 상속분할협의를 택한 사실 자체가 채무 회피 의도가 없었음을 반증한다는 네 가지 논리를 편 결과였다. 법리와 가족의 정을 동시에 설득한 사례였다.

최유철 전 의성군의회 의장.
최유철 전 의성군의회 의장.

최유철의 현장 경험은 제도적 언어로도 이어졌다. 2000년부터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의성군연합회 법률고문을 맡아 26년째 농업인 권익 자문을 하고 있고, 시선뉴스에 생활법률 칼럼을 연재하며 경상북도 농민사관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민법의 구조와 형법의 이익이라는 전문서를 출간했고, 올해 2월에는 지방자치조직과 분권법제론, 공직윤리와 적극행정의 법리까지 두 권을 더 펴냈다.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1만 장이 넘는 원고를 집필하며 단 한순간도 가슴에서 놓지 않았던 문장이 있습니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중용 제23장의 가르침입니다."

최유철의 정치 이력은 2007년 3월 한나라당 입당에서 시작된다.

입당 한 달 만에 군위·의성·청송 당원협의회 중앙부위원장을 맡았고, 같은 해 5월에는 국회의원 박근혜의 경북 특별보좌역으로 활동했다. 11월에는 제17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경북 의성군 선대본부 대외협력본부장. 입당 첫 해부터 대선 현장 실무에 투입됐다.

2012년은 가장 밀도 높았던 해다.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새누리당 김재원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고,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새누리당 조직총괄본부 전략홍보위원장, 경북선대위 직능대책위원회 의성본부장, 국민희망통합위 본부장까지 한 해에 네다섯 개의 직함이 겹쳤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는 경상북도당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의장 경력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제7대 의성군의회 의원으로 첫 당선된 뒤, 2016년 초선 신분으로 의장에 선출됐다. 초선 의장은 지방의회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재임 기간 중 대한노인회 의성군지회 지원에 관한 조례와 의성군 건강복지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대표발의했다.

노인단체 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경로당 운영과 노인일자리, 여가·교육·자원봉사 활동 활성화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고, 의료·요양·복지 기능을 통합한 돌봄 체계를 조례로 정착시킨 것이다.

그의 의정 활동은 2017년 대한민국 사회발전대상 지방자치부문 대상, 2017 도전 한국인상 지방의회부문 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당 활동은 이후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임이자·김희국 국회의원 선거에 각각 의성군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현장을 뛰었고,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는 박형수 국회의원 의성군 공동선대위원장을 수행했다.

현재 국민의힘 경북도당 부위원장, 의성군 당원협의회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올해 1월에는 중앙위원회 농림축산분과위원회 부위원장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다시 국민의힘으로. 보수 정당이 이름을 세 번 바꾸는 동안 대선 두 번, 총선 네 번, 수차례의 지방선거를 거치며 거의 매 선거마다 의성 지역 선거 조직의 현장 실무를 맡아온 셈이다. 지역 기초 단위에서 이 정도의 선거 실무 밀도를 가진 인물은 경북 정치권에서도 쉽게 찾기 어렵다.

긴 의성 거주 이력과 당 활동 경력이 곧바로 행정 능력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중앙 정부 경험이나 광역 단위 의정 활동이 기초자치단체 운영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의성이 처한 현실은 통상적인 잣대와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소멸위기 전국 1위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지역에서 군수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정책 설계 이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일상에 닿는 것이다. 외부에서 가져오는 경험보다 내부에서 쌓아온 관계망과 현장 감각이 먼저 작동해야 하는 곳이 지금의 의성이다.

최유철은 3월 12일 출마 선언에서 "잘사는 의성, 준비된 군정"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AI 농업 중심의 농업 가치 확장, 청년 정착 생태계 구축, 어르신 통합돌봄 체계 강화, 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의 주민 환원 등 네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이라는 지역 환경 변화를 의성의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함께 밝혔다. 정책의 실행력은 앞으로의 과정에서 증명될 일이지만, 그가 이 정책들을 말할 때의 위치는 분명하다.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살아온 사람의 자리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성군수 선거는 단순한 자리 다툼이 아니다.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져가는 지역의 다음 4년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의 문제다. 평생을 의성 한 땅 위에서 살아온 사람이, 매 선거마다 의성 현장의 맨 앞줄에 섰던 기록.

한 정치평론가는 "결국 이 선거는 의성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매 선거마다 현장에 있었다는 기록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무게를 갖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