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조직이다. 군 통수권나 지휘관의 명령은 지체 없이 이행되어야 하는 것이 군대다. 명령이 부당한지 아닌지 판단하려 하거나, 명령을 이행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면 더 이상 군대가 아니다. 무기를 든 잡다한 인간들의 무질서한 떼거리일 뿐이다.
러시아의 1917년 2월 혁명 후 케렌스키 임시정부와 혁명세력인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하의 러시아 제국군이 그 꼴이었다. 그해 3월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는 군 내부 혁명세력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한 명령 제1호를 공포(公布)했다. 이에 따르면 사병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예상됐던 경로(經路)이겠지만 이는 사병들이 장교의 특정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를 두고 장시간 논쟁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군대의 생명인 규율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러시아 문화사가인 V. V. 코지노프는 이를 "군대의 파괴"라고 했다.
이대로 안되겠다고 판단한 소련 지도부는 적백(赤白) 내전의 베테랑 지휘관 미하일 프룬제의 주도로 군을 개혁하면서 1925년 장교의 명령권과 처벌권의 부활을 포함한 규율 규정을 도입했다. 하지만 군내 공산당원들은 이를 제국 군대의 나쁜 구습(舊習)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거세게 저항했다. 이런 심성하에서는 '군대다운 군대'는 가능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영국의 군사 역사가 리처드 오버리는 1941년 독소전(獨蘇戰) 초반에 붉은 군대가 "왜 그토록 무능하고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설명해준다"고 했다.('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내란 척결을 내세운 이재명 정권의 군 숙정(肅正)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 군을 1917년 러시아 제국군과 같은 '군 같지 않은 군'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방부는 주성운 지상작전사령관(대장)을 직무 배제하고 수사 의뢰한 데 이어 강동길 해군참모총장(대장)도 직무 배제에 이어 중징계(정직 1개월) 처분했다. 모두 '헌법존중정부혁신태스크포스'(TF) 조사에서 계엄 연루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강 총장은 징계 발표 후 사의 표명)
정부 TF는 110명을 수사 의뢰했다. 이 중 108명이 주 사령관을 포함한 군인이다. 징계 대상 공무원 89명 중 48명도 군인이고 경찰은 22명이다. 모두 상명하복의 기율(紀律)을 지켜야 하는 조직 구성원들이다. TF는 이들이 군인복무기본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상관 명령에 복종했다고 해도 계엄 선포가 위헌·위법이어서 명령과 지시를 적극 거부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동의하기 어렵다. 제3자의 사후 판단일 뿐이다. 계엄 당시 출동 명령을 받은 군인 중 계엄이 위헌·위법한지 알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법률 전문가인 김상환 육군 법무실장조차 계엄 당시 계엄사령부에 차출돼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서울로 향하던 '계엄 버스'에 탑승했다가 근신 처분을 받았다.
군은 명령이 떨어지면 기계적으로 단호히 이행하도록 훈련된 집단이다. 초 단위로 상황이 바뀌는 전장에서 명령의 적법성을 따지고, 이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면 그만큼 대응 속도는 늦어진다. 이는 파멸적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TF의 결정은 명령을 이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군인 같지 않은 군인이 되기를 강요하고, 명령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할 법률 지식까지 요구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 계엄 지시를 이행했던 군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사후에 '내란 연루(連累)'로 둔갑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이런 곤경을 피하려면 군인들은 지금의 명령 이행으로 훗날 어떤 뒤탈이 날지 내다보는 예지력(豫知力)까지 갖춰야 할 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숙군(肅軍)은 우리 군을 정무적 판단에 집착하는 집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당시에는 위헌·위법한 명령인지 몰랐는데 정권이 바뀌자 그 명령을 적극 거부하지 않았다고 처벌받는 것과 비슷한 일이 정권이 또 바뀌었을 때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이런 걱정 때문에 정권이 바뀐 다음에도 살아남기 위해 적당히 눈치 보며 진급에만 관심이 있는 '샐러리맨' 군인들을 양산하지 않을까? 현 집권 세력의 군 난도질은 이런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재명 정권은 우리 군이 어떤 군대이기를 원하는가? 그런 군대가 군대다운 군대일까? 그리고 그 군대는 '국민의 군대'인가 '정권의 군대'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