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세계적인 연주자들 중에는 연주 당일까지 레퍼토리를 공개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음악의 흐름을 열어두는 선택이다.
안드라스 쉬프는 독주회에서 사전 프로그램을 고정하지 않거나, 연주 당일에야 곡의 구성을 밝히는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게 음악은 미리 완성된 계획이라기보다, 그날의 악기와 공간, 그리고 연주자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과정에 가깝다. 유자 왕 역시 연주자는 그날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태도로 프로그램을 유연하게 다뤄왔다. 이들에게 프로그램은 고정된 약속이 아니라, 음악이 향하는 방향을 느슨하게 가리키는 표식에 가깝다.
화가들 역시 작품을 완성한 뒤에야 제목을 붙인다. 제목은 작업을 이끄는 설계도라기보다, 끝난 뒤 따라붙는 설명에 가깝다.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의미보다 작업의 과정을 이야기할 때 더 편안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습하는 동안 감정은 변하고 해석은 이동한다. 즉흥성과 유동성은 예술을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독주회를 준비하며 나는 이 감각이 제도와 자주 어긋난다는 것을 느꼈다. 대관이나 지원사업을 위해 제출하는 서류 속에서 공연의 주제와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고정된다. 이후의 변화는 예외로 취급되고, 다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 사이 예술가는 계속 연습하고 새로운 영감을 만나지만, 서류 속 공연은 이미 멈춰 있다.
문제는 세부 조정의 폭이 아니다. 공연의 큰 주제가 한 번 정해지는 순간, 예술의 방향 자체가 묶인다는 점이다. 준비 과정에서 전혀 다른 감정이나 사유에 도달하더라도,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예술의 타이밍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로 이월되는 셈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예술가는 스스로를 조정하게 된다. 더 나은 방향이 떠올라도, 이미 제출한 기획 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생각을 정리한다. 조심스러움은 미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많은 가능성은 시도되지 못한 채 남는다.
그래서 질문은 달라진다. 공연의 주제와 세부 내용보다, 예술가가 어떤 질문을 던져왔고 어떤 선택을 반복해왔는지를 먼저 신뢰하는 방식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 시간의 축적이야말로 하나의 기획서보다 더 정확하게 예술가를 설명해주지는 않을까.
예술은 본래 예측 가능한 결과를 목표로 움직이지 않는다. 살아 있는 창작은 진행 중에 방향을 바꾸고, 계획과 다른 얼굴로 도착한다. 만약 제도가 공연 하나의 완성도를 먼저 증명받기보다, 예술가가 쌓아온 시간과 선택을 신뢰의 단위로 삼을 수 있다면 창작의 풍경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을 통제하기보다 시간을 존중하고, 결과를 관리하기보다 과정을 신뢰하는 방식 말이다.
예술을 관리하는 대신 예술가를 믿는 일. 그것은 방임이 아니라, 예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예술은 언제나 계획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고, 질문은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제도 역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과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