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한적한 강원도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다 '몸을 기울여' 보면, 간혹 철근 구조가 너덜너덜한 채 시멘트와 녹슨 자국들이 그대로 드러난 채 들고양이들의 집터가 된, 호러 영화에서나 볼 법한 3, 4층 규모의 미완공 건물들을 볼 때가 있다. 마치 죽은 자들의 영혼과 동네의 고양이들과 견(犬)들의 정글이 되어버린 내·외부 공간은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포감마저 든다. 이러한 공포감은 분위기만으로도 폭력적이고, 미완의 건물 사이로 누적된 시간은 소설 한 권을 쓸 정도로 무한한 이야기를 상상해 낼 수 있다. 이 공간에 지역의 권력자인 특정한 한 사람과, 어린 시절 동네 친구 집단이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시간이 있다면 어떨까. 누구에게는 잔인한 폭력의 피해자로, 버려진 고양이를 애정하는 캣맘으로, 혹은 여전히 들고양이들을 죽이고 건물을 올려 지역 개발에 집착하는 누군가로 존재할 수도 있다면, 이 특정 공간에서 발화되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워진다. 마지막 한 사람은 과거 기억의 트라우마로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여야만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정의로운 정치(政治)"를 하고자 하는 권력자라면, 기분이 어떤가?
매일같이 칼날을 갈아 소, 돼지의 살점을 쓸어내는 정육점이 빈 건물터 주변에 들어서 있고, 반려묘를 인간보다 더 사랑하는 캣맘까지 등장해 있다면, 이 공간은 더 이상 폐허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과 욕망, 폭력과 연민이 뒤엉킨 살아 있는 서사의 현장이 된다. 눈치를 챘겠지만 <몸이 기울려>의 배경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띨뿌리』,『묵티』등을 써온 김윤식 작가와 신진호 연출의 <몸이 기울려>는 지역 군수인 동파(김상보 분)를 중심으로, 비비탄 총알을 피하기 위해 고양이를 죽여야 했던 어린 시절의 강요된 가해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고, 이후 야생고양이를 죽이며 스트레스를 풀려는 폭력의 방식으로 반복되는 과정을 다룬다.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폭력을 통해서만 불안을 해소하려는 잔혹한 자기 방어의 메커니즘이 된다. <몸이 기울려>는 피해와 가해의 기억이 뒤엉킨 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이 기울어진 채, 유사한 폭력에 동조하거나 가해와 피해의 순서만 바뀐 채 그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극 중 인물들의 이야기다. 마치 대한민국 뉴스를 떠들썩하게 한 집단적 폭력의 가해자들이 2, 30년이 지난 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관찰일지쯤 되는 것 같다.
◇ 현실의 전경과 트라우마의 내면이 중첩된 두 층위로 기울어진 충돌의 낯섦
김윤식 작 <몸이 기울려>는 제목을 제외하면 서사 전반이 매우 현실적인 인물과 전경을 바탕으로 한 희곡이다. 무대 배경은 가상의 공간인 경기 남부 가양군 도암읍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지역은 과거 군부대(군기지)가 있던 공간으로, 현재는 이전·철수 이후 아파트, 상가, 역시설 등이 거론되는 전형적인 군사시설 이전 개발지역이다. 철근 구조가 너덜너덜해 보이는 상권 붕괴 이후의 건물 내부에 정육점이 들어서 있고, 군부대가 철수한 공터는 길고양이들의 서식지가 되어버린 지역이다. 극을 견인하는 설정은 크게 네 가지다. 무대 배경을 군부대 인근의 한 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 둘째, 극중 인물 동파를 지역의 군수이자 국회의원으로 특정하고 있다는 점. 셋째, 동파(김상보 분), 흥인(유독현 분), 병민(조형래 분), 두영(홍성민 분)을 어린 시절 고양이를 죽이고 비비탄으로 집단 폭력을 행사했던 가해자로 묶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 지역이 여전히 길고양이들의 서식지로 남아 있고 과거 폭력이 현재의 공간 속에서 반복·전이되고 있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몸이 기울려>는 집단 폭력의 과거 피해자였던 동파가 현재에는 야생고양이를 죽이는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가는 시간과, 어린 시절 집단 폭력의 주도자였던 병민과 주변 인물들의 가해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면의 상태를 병치해 보여준다. 이들은 각기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모두 저마다 기울어진 몸의 상태로, 폭력의 트라우마와 경험이 현재에도 반복되는 존재들이다. 특히 동파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권력과 정의의 뒤에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작가의 서사 구조를 비약적으로 '몸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70, 80년대 특정할 수 있는 군부 조직, 유신 시대의 폭력성 등을 떠올리게 되고(군부대 인근으로 설정되고 있다는 점), 한 시대를 집단화한 군 출신 조직까지 연상하게 된다. 누구를 향한 충성의 '몸 기울기'는 폭력의 역사를 반복하게 하는 동파와 유사한 정치인과 권력자들, 정당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가해적 폭력의 집단적 리더였던 병민의 폭력은 현재에도 한 고등학생을 가해할 정도로 이어진다. 군부대가 이전해 공터로 변화되었는데도 폭력은 계속되고, 정치권과의 권력 유착은 또 다른 형태의 비리로 증식하는 한국 사회의 현상과 맞물린다. 작가는 군부 시대가 종식되고 하나회 해체와 6월 항쟁의 민주화 시대를 지나왔어도 폭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집단화되고, 누군가는 가해자로, 방관자로, 혹은 부패에 동조하거나 기득권화된 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 기울기'를 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현실을 조준하는 듯하다. 고양이 설정과 고양이 울음소리는 집단적 폭력으로부터 희생된 역사 속, 혹은 현재에도 진행 중인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공터를 배회하는 고양이는 자기 집 마련조차 넘사벽이 된 한국 경제 속에서, 양극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으로도 읽힌다.
특별한 점은 작가가 평이한 극 구조 위에 현재의 장면들(동파의 길고양이 학살, 병민이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 CCTV와 국회의원 선거, 흥인과 서라가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가는 과정)과 병민의 폭력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시간(어린 시절 군대 놀이와 고양이 학살 놀이)을 동일한 공간 공터로 중첩시킨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폭력의 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재와 과거의 기억이 교차한다. 고양이 학살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파의 내면의 소리는 일렉 기타 사운드로 내면화되고, 고양이 탈은 과거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가 된다. 선거운동 율동과 동파가 고양이를 학살하는 과정은 초현실적으로 장면화된다. 이로써 <몸이 기울려>는 과거·현재·동파의 기억과 내면이라는 세 층위로 장면 서사를 중첩하고 극 중 장면으로 병치해 시각화 된다.
이러한 작품의 방향이 신진호 연출로 이동하면서 군기지 공터, 정육점, 스크린골프장 등 익숙한 지역의 현실적 풍경을 연극적 일루전의 공간으로 확장되면서도 군수·형사·정육점 사장이라는 극중 인물들의 연기는 극사실적으로 발화될 수 있는 연기성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소리는 극도로 일상화된다. 감정의 극대화나 동작과 움직임의 계산된 이동을 배제한 채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대사와 감정은 명확하게 전달되고 극중 인물들의 캐릭터는 또렷하게 구축된다. 무대의 공간과 배우들의 연기가 이질적인 감각을 드러내는데, 폭력성이 내재한 극중 인물들의 내면이 평온함을 유지하는 듯 보이면서도, 오히려 각 인물 안에 침전된 폭력성이 내면화된 연기로 드러난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광기의 폭력들이 감각된다.
연출은 어린 시절의 집단 폭력과 동물 학살이라는 집단적 기억을 현재의 공간, 즉 병민을 중심으로 한 극중 인물들(동파, 흥인, 우석, 두영)의 어린 시절 인간 과녁 놀이와 고양이 학살 장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연출은 역사적(歷史的) 트라우마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집단 폭력의 기억에 침잠해 있는 인물들의 내면을, 극적인 일루전과의 거리두기, 초현실적 전경과 일상성의 병치를 통해 드러낸다. 그 결과 현재에도 반복·전이·중첩되는 폭력의 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형상화한다. 이러한 폭력성은 병민과 동파, 우석과 두영이 또 다른 유착 관계의 비리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며,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는 기억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이 기울려' 있는 극중 인물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결국 이 작품은 과거의 폭력이 현재의 관계와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드러낸다. 동파를 중심으로 한 과거의 시간과 현재, 그리고 서로 다른 기억들의 시간 층위가 연출적으로 하나의 공간에 병치되고, 고양이 탈과 일렉 기타 연주 등의 장치를 통해 폭력이 반복·전이·중첩되는 동일 구조를 형상화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극중 인물의 관계와 시간, 공간, 내면의 변화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설정이 두드러지는 장면들이 된 인상이다. 무대 공간으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 고양이 탈과 일렉 기타, 트라우마의 소리와 환상성 그리고 사실적 연기
아르코예술극장(소극장)으로 들어선 무대는 군부대 인근의 폐허로 보이는 3층 정도 높이의 건물과, 하수 방향으로 폐기물 더미가 중장비에 올려진 육중한 시각적 분위기로 공간을 구도화하면서, 이곳이 군부대가 남아 있던 재개발 진행 중인 가상의 도시 도암읍 인근 공터임을 알게 한다. 무대 상층에 매달린 폐기물 더미 오브제는 건물의 잔해를 삼킬 듯한 폭력성을 드러내며, 무대 전체의 공간은 이러한 폭력적 구조로 서로 연결된다. 그 하층에는 손님이 끊겨버린 병민이 운영하고, 흥인과 우석이 정형사로 고용된 정육점이 자리한다. 사분도체된 육류의 살점은 정형사의 발골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매달려 있다. 그 앞의 공간은 외부와 연결되며, 건물과 공터, 정육점은 분리된 장소라기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폭력과 죽음으로 이어져 온 하나의 연속된 공간으로 겹쳐진다. 죽음은 군부대가 자리한 공터이면서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죽어가는 장소이자, 정육점에서는 도축된 소·돼지들이 마지막으로 정형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으로 설정된다.
이러한 공간들의 중첩 속에서 김윤식 작가가 <몸이 기울려>에서 향하는 방향은 폭력이라는 구조를 응시하는 데 있다. 이 구조는 특정 인물의 성향이나 사건으로 귀결되지 않고, 과거의 집단 폭력 경험이 현재의 일상적 관계와 생계의 공간 속으로 스며들며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폭력성은 개인이나 집단의 광기로 학살, 학대, 전쟁, 계엄, 독재 등 극단적 형태로 드러나지만 <몸이 기울려>에서는 학폭과 학대, 도축, 캣맘을 소재로 하면서도 사건들의 나열보다 폭력성이 일상의 구조속에 침전되어 반복되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이러한 무대 공간 속에서 정형사 흥인은 날카로운 칼날 소리를 '쓱싹쓱싹'거리며 폭력과 죽음이 교차하는 음산한 소리들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낸다. 칼날의 리듬은 정형사의 노동 행위를 넘어 이 공간을 지배하는 폭력적 소리로 전유된다. 흥인이 기르던 고양이 모루와 망치를 찾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첫 장면부터 연출은 고양이를 찾는 공터와 주변 공간을 극적인 분위기 대신 실내등 불빛의 일상적 공간으로 전환해, 폐허가 되어가는 군부대 공터 주변을 날것 그대로의 분위기로 확장한다. 극중 인물들의 등장과 정육점으로 전환되는 2장까지는 물건을 나르고, 남자(임솔균 분)로 분한 인물은 전선을 연결하거나 정육점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시작된다. 마치 극장 공간이 아닌, 대낮부터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공간의 분위기는 극적인 시각성보다는 일상을 더 일상스럽게 드러내는 감각으로 채워진다.
고양이들이 죽어가는 공터에 마치 캠핑 온 것 같은 분위기로 흥인, 동파, 우석, 두영이 오랜만에 군수를 축하해주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극은 이들의 과거 이야기부터 흥미로워진다. 언제나 광기의 폭력성은 일상적인 평온함의 가면으로 위장한 채 잔혹성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남자는 극중 인물 중 집단의 폭력성과 기억, 과거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인데, 남자의 설정은 폭력의 구조를 바라보는 증인자의 시선이다. 동파가 고양이를 죽이는 행위 역시 CCTV나 병민과 우석이 촬영한 현장 영상으로 제시되며, 폭력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동파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남자는 그 폭력의 현장에 깊숙이 개입하기보다, 반복되는 폭력의 구조를 거리 두고 응시하는 위치에 머문다. 그럼에도 연출은 선거 장면과 동파가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 등에서 고양이 탈을 남자에게 씌우며, 남자를 살육 현장과 또 다른 폭력을 바라보는 증인자의 이미지를 판타지적으로 형상화한다. 결국 극중 인물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이 기울어지는 것은, 폭력의 가해(피해)자, 관찰자, 응시자, 방관자, 동조자라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존재하면서도 <몸이 기울려>가 하나의 구조 안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은 보궐선거 후 동파가 국회의원이 된 뒤의 상황이 그려지는데, 동파의 고양이 살인을 묵인한 대가로 병민의 청탁에 의해 이루어진 재개발 이후의 이권 속에서 병민의 정육점이 또 다른 신규 건축물 상가로 이동되는 시공간의 변화를, 연출은 정육점 공간을 무대 앞까지 이동시키며 시각적으로 입체화한다. 결국 길고양이들의 캣맘인 서라(강혜련 분) 나 어린 시절 가해 폭력에 가담했던 흥인은 병민, 우석과 함께 정육점이라는 공간에 묶여 있으면서, 재개발과 이권, 동파의 범죄가 거래되는 구조 속에서 침묵하는 존재다. 그는 적극적으로 폭력을 지시하지 않지만, 폭력이 유통되는 과정에 편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방관자의 경계에 서 있다. 유일하게 서라만이 "어떻게든 우리 애들(고양이) 죽인 새끼 내가 잡아서 벌 받게 할 거야. 그래서 그 새끼 옷 벗게 만들 거야..(중략)"라고 말하며, 폭력의 역사성과 정치적인 이권, 그리고 부패의 구조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현상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분노라기보다, 은폐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는 데 있음을 환기시킨다.
결국 김윤식 작·신진호 연출의 <몸이 기울려>는 폭력과 죽음, 그리고 그 구조를 경험하거나 바라보는 각 극중 인물들의 시선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서로 다른 몸의 방향으로 기울어 가는 상태들을, 극중 장면들을 통해 구성한다. 과거부터 폭력의 장소인 공터로부터 다른 시간, 동일 공간, 특정 인물들까지 그 구조가 서로 연결되도록 병치시켜 보여주려는 의도는 인지할 수 있으나, 이를 무대 시각으로 충분히 형상화하지 못한 채 장면화의 수준에 머문 인상이다. 무대의 공간, 극사실적 연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겹쳐지는 극중 장면과 고양이 탈의 환상성, 그리고 일렉 기타 소리라는 인물 내면의 트라우마적 소리(고양이 울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남는다. 배우들의 연기와 현실과 환상의 공간, 시공간의 중첩성 또한 충분히 결합되지 못했다. 현실의 전경과 연기, 트라우마의 폭력적 내면이 중첩된 세 층위의 충돌과 부조화로 의도는 보였지만, 의미는 무대 공간으로 충분히 풀어내지 못했다.
신진호 연출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활용되지 않은 그로테스크한 무대 세트의 구조성을 과감히 덜어내고, 시공간이 중첩되거나 초현실적으로 형상화되는 장면들의 공간성을 분리하거나 독립시키는 방향에서 몸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 배우들의 연기, 무대 세트, 공간, 시공간의 중첩, 일렉 기타 연주, 고양이 탈 등의 설정들이 '폭력'이라는 하나의 통로로 충분히 수렴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어, 전체적인 극에서 작가·배우·연출의 방향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느낌을 준다. 극중 인물로 분하기 어려운 역할임에도 연기의 설정은 폭력적으로 보일 만큼 사실적이었다. 신진호 연출은 이번 창작산실 무대에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이 재공연된다면 공간부터 과감히 걷어내고, 무대는 전작 <소년대로>처럼 오브제와 미니멀한 무대공간으로 접근하고, 극은 <카르타고>처럼 밀도 있게 다듬는 편이 오히려 신진호다운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희곡부터 연출, 배우까지 각자의 장점은 분명한데, 그것들을 하나의 공간적 구조로 조직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한번 <몸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