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수용] 토큰(Token) 경제

입력 2026-05-1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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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스마트폰으로 버스 요금을 결제하는 세대에겐 낯설겠지만 기성세대에게 '토큰'은 익숙하다. 1999년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20년가량 버스를 타려면 구멍 뚫린 동전 모양의 버스 토큰이 필요했다.

요즘엔 인공지능(AI) 사용 요금 단위인 토큰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화제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말을 잘게 쪼개 토큰 단위로 처리한다. 토큰 1개는 대략 단어 0.75개 분량으로, 영어 기준 1천 단어짜리 문서라면 약 1천300개 토큰에 해당한다. 이미지나 음성은 수백에서 수천 개 토큰이 필요할 수 있다. AI에 입력하는 양과 AI가 돌려주는 답변 모두 과금(課金) 대상이며, 출력 토큰은 입력 토큰보다 3~10배 비싸다. 최신 AI 모델 기준으로 입력 토큰 100만 개당 약 2.5달러, 출력 토큰 100만 개당 약 20달러 수준이다.

AI 신봉자(信奉者)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연봉 50만달러 엔지니어가 연간 5천달러어치 토큰만 썼다면 기가 막힐 것"이라며 "AI를 안 쓰는 엔지니어는 종이와 연필로 반도체 설계를 하는 것과 같다"고 토큰 사용을 독려했다. 엔비디아는 직원 토큰 비용으로 연간 3조원가량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엔비디아처럼 AI 사용을 장려할 수는 없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는 월정액 구독제로 AI를 쓰지만 기업 내부에선 사용량에 따라 토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최근 '토큰 경제학'이 기업 경영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사람은 오래 고민해도 전기요금이 더 나오지 않지만 AI는 오래 생각할수록 토큰을 더 먹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테크 업계에서는 기이한 풍경도 벌어진다. 연봉 계약을 맺을 때 급여 액수 옆에 '연간 사용 가능한 AI 토큰 총량'을 복지 혜택으로 명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반대로 직원별 AI 사용량을 관리하거나 "불필요하게 긴 질문은 자제하라"는 내부 지침을 내놓는 기업도 있다. 산업혁명 시대 기업들은 석탄 사용량을 계산했고, 디지털 시대 기업들은 클릭 수를 계산했는데, AI 시대 기업들은 토큰을 계산한다. 미국 AI 업계에선 월정액 시대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구독자 확보용 출혈 경쟁이 끝난 뒤엔 AI 종량제(從量制) 시대가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