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소설가
카메라와 인간의 눈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카메라의 노출로 통칭되는 조리개, 셔터 스피드, ISO 감도 이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뤄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듯이 인간의 눈 또한 동공, 수정체, 망막이 잘 어우러져야 사물을 제대로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눈은 카메라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졌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마음의 작용입니다. 싫어하는 대상과 좋아하는 대상을 볼 때 우리의 눈 모양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게슴츠레 본다. 째려본다, 눈이 화등만해졌다, 젖은 눈으로 바라본다 등등 눈과 관련된 묘사는 결국 마음으로 귀결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란 말은 그런 점에서 적실합니다.
글쓰기 역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상을 정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선택의 최종 결정권자는 마음입니다. 제 마음은 대부분 그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유의할 점은 그늘은 고착화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과 그늘은 서로에게 빚지고 삽니다. 그늘이 있어 빛은 도드라지고 빛이 있어 그늘은 웅숭깊습니다.
가령 우리는 고독한 시간을 걸으며 빛에 데였던 상처를 씻어냅니다. 상처가 아문 자리는 빛의 채도를 회복합니다. 그늘이 깊어 얼었던 마음자리에 빛이 깃들고 마침내는 서서히 온기를 넓혀 말랐던 물기를 회복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늘은 처음부터 그늘이 아닙니다. 갈변했거나 쪼그라든 잎사귀 또한 빛의 구간을 지나왔습니다. 누군들 빛과 그늘이 없겠습니까. 그늘이나 빛 둘 중 하나만이 온전한 것으로 간주되는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돌아보면 그동안 연재한 칼럼 또한 대부분 그늘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그늘의 풍경을 찍는 마음 조리개엔 '선의(善意)'라는 센서가 달려 있습니다. 저 기능이 없는 분들에게 이참에 과감히 장착할 것을 권합니다. 있긴 한데 오래전에 고장이 났거나 되다가 안 되다가 하는 수준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우선적으로 손볼 것을 당부합니다. 세상이 천국과 같다면 저런 센서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힘든 세상을 헤쳐가기 위해 각기 특유의 방편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완벽한 건 없습니다. 자신의 것이 완벽한 방편이라 자신하는 분은 그것이 다른 수많은 방편의 '이바지'로 기능한다는 걸 아직 모르시는 것입니다.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합니다. 한 점 그늘도 없을 것 같은 풍경입니다. 그러나 눈에 묻힌 그 아래가 또한 그늘입니다. 누군가의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눈부신 빛과 그 빛의 그늘에 갇힌 존재를 생각해 봅니다. 빛과 그늘의 공유면적은 일치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