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정성태] 작용과 반작용

입력 2026-01-27 09:53:38 수정 2026-01-27 09:55:24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뉴턴의 운동 제3법칙은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라고 요약된다. 이 문장은 흔히 작용이 먼저이고 반작용이 뒤따른다는 인과 관계로 오해된다. 그러나 두 힘은 앞뒤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 다른 물체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과학 교과서에서 출발한 이 표현이 일상의 언어로 옮겨오는 순간, 그 동시성은 쉽게 사라진다. 사회의 언어 속에서 반작용은 대개 '뒤늦게 나타난 문제'나 '불필요한 저항'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작용과 반작용은 서로를 상쇄하거나 멈추게 하는 법칙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이 가능해지는 조건에 가깝다. 이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을 가르는 기준도, 옳고 그름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양비론도 아니다. 작용만으로 완결되는 변화는 없고, 반작용 없이 지속되는 현실도 드물다.

귤을 까면 알맹이와 껍질은 분명히 나뉜다. 우리는 대개 알맹이를 목적처럼 여기고 껍질은 주저 없이 버린다. 그러나 껍질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 귤껍질은 말리면 '진피'라는 한약재가 된다. 소화를 돕고 담을 없앤다는 기록은 오래된 의서에 남아 있다. 알맹이를 먹고 남은 껍질은 쓰임을 알지 못할 때만 쓰레기다.

어릴 적 감기 기운이 있으면 어른들은 귤껍질을 말려 달인 물에 꿀을 타 주곤 했다. 김이 오르는 컵을 두 손으로 잡고 호호 불며 마시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달콤 쌉싸름한 맛과 향이 섞인 그 물은 약이자 위로였다. 알맹이를 먹고 남은 껍질은 시간이 지나며 전혀 다른 역할로 돌아왔다.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정책이든, 어떤 유행이든 등장하는 순간 반작용은 함께 발생한다. 그것은 변화의 실패라기보다 변화가 실제로 사회의 어딘가를 건드렸다는 신호에 가깝다. 반작용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가 현실에 닿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맹이만 남기고 껍질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화는 특히 그렇다. 중심이 생기면 주변이 생기고, 주류가 등장하면 비주류는 말을 건다. 작용만을 변화의 방향으로, 반작용을 장애물로 여기는 태도는 귤껍질을 무조건 버리는 습관과 닮아 있다. 알맹이와 껍질은 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서로를 전제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자주 묻는다. 무엇이 더 옳은가, 무엇이 더 쓸모 있는가. 그러나 문화의 질문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알맹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이며, 너무 쉽게 껍질로 밀어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껍질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