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수용] 호르무즈의 황(黃)

입력 2026-03-16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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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호르무즈 해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석유다. 페르시아만 입구를 가로지르는 폭 30여㎞의 해협은 원유 해상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에너지 동맥이자 갖가지 원자재가 통과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목'이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벌어진 이른바 '탱커 전쟁(Tanker War)' 당시 약 8년 동안 500척이 넘는 상선이 미사일과 기뢰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포화 속에도 항로 자체가 완전히 닫힌 적은 드물었다. 국제 해군 호위와 해상 공조가 바다를 계속 열어둔 이유는 해협 봉쇄가 에너지 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호르무즈의 진의(眞意)는 석유로 끝나지 않는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최근 분석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비료 수출의 약 20~30%가 지나가는 해상 병목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비료 원료인 황, 암모니아, 요소 등의 물류가 막히면 그 충격은 식량 위기로 번진다. 특히 원유 정제 과정에서 부산물로 대량 생산되는 황은 매우 중요하다. 황을 태워 만든 황산은 인산(燐酸) 비료 제조의 핵심 원료다. 인산 비료는 인광석을 황산으로 처리해야 만들 수 있다. 황이 없다면 인광석은 활용도가 극히 떨어지게 된다. 황의 공급망 마비는 글로벌 식량 안보를 정조준하는 '화학적 도미노'로 이어진다. 금속 제련부터 배터리 소재 제조까지 역시 황산이 필수다. 나노미터급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를 씻어 내는 초고순도 황산은 대체 불가능한 물질이다. 호르무즈의 동맥경화가 수출의 심장인 반도체 라인을 멈춰 세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황 생산의 상당 부분이 원유 정제와 천연가스 탈황(脫黃) 과정에서 나온다. 즉 화석연료 사용이 줄면 부산물인 황도 감소한다. 이른바 '황의 역설(Sulfur Paradox)'로 불리는 대목이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장기적으로 다른 기초 원료의 부족을 낳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석유 통로가 아니다. 에너지, 비료, 화학 원료가 동시에 흐르는 복합 공급망의 결절점(結節點)이다. '에너지 안보'라고 부르는 문제 역시 사실 훨씬 폭넓은 산업 원료 안보에 가깝다. 호르무즈에서 석유만 바라보면 절반만 본 셈이다. 세계 경제의 급소는 생각보다 깊은 곳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