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독립운동기념관, 2014년부터 매달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대한광복회 결성 및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 높은 평가
국가보훈부 "의병 항쟁부터 독립운동사를 관통한 인물이자, 나라 기틀 마련한 민족의 영웅"
대한제국 군인에서 의병으로 나서 일제에 맞섰던 우재룡 선생이 '경북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며 그의 항일 정신과 삶을 기리는 행사가 대구에서 열렸다.
20일 오전 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서는 경북 1월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우재룡 선생을 기리는 추념식이 거행됐다. 이날 행사는 (사)백산우재룡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광복회 대구광역시지부가 후원했다. 유족과 기념사업회 회원, 지역 보훈 관계자 등이 참석해 선열의 넋을 기렸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은 2014년부터 매달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업적을 알리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우재룡 선생은 대한광복회 결성에 참여해 지휘장을 맡았고, 국내외를 오가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등 조직적 항일 투쟁에 헌신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유족대표인 우대현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각오로 쉼 없이 독립투쟁을 펴신 선열과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도록 후손으로서의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종술 국가보훈부 대구지방보훈청장은 "우재룡 선생은 의병 항쟁부터 대한광복회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사를 관통한 인물이고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앞장선 민족의 영웅"이라며 "국가보훈부는 우재룡 선생을 비롯한 선열들의 업적을 국가 차원의 기억과 교육으로 계승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884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우재룡 선생은 1903년 대한제국 대구진위대 참교로 복무했다. 그러다 항일 의병 부대인 산남의진에 합류, 군복을 벗고 항일 투쟁에 뛰어들었다.
대구와 경북 일대에서 선봉장, 팔공산 유격장 등을 맡아 전투를 지휘했고, 1908년 체포되면서 종신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3년 이후 특사로 풀려나 다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에 참여해 지휘장으로 활동하며 무장투쟁과 독립자금 모집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다시 체포된 그는 1922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원산형무소에 수감됐고 17년간의 복역 끝에 1937년 석방됐다.
해방 이후에도 우재룡 선생은 독립운동의 기억을 정리하고 계승하는 데 힘썼다. 1945년 광복 후에는 서울에서 재건광복회 조직에 참여했다. 생애 말년에는 자신의 투쟁사를 구술로 남긴 뒤 1955년 서거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공로훈장인 '독립장'을 수여했다. 또한 국가보훈부는 200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