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의 11개월간 하루 기록
대구교육박물관, 올해 '만화로 보는 여학생 일기' 출간
'겉일기'와 '속마음 일기' 이중 구조로 역사적 가치 함께 담아
애니메이션 2편도 함께 제작… 유튜브에서 누구나 시청 가능
대구교육박물관을 통해 되살아난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여학생의 삶이 담긴 '여학생일기'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다. 소녀의 기록은 단순 과거의 흔적을 넘어 청소년과 시민이 함께 공감하는 교육·역사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됐다.
◆서울 헌책방에서 되살아난 대구 소녀의 기록
'여학생일기'는 2007년 일본 동지사대학 오타 오사무 교수가 서울의 한 헌책방에서 발견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연구를 거쳐 2013년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묻다'라는 책자에 '중일 전쟁 시기 대구 조선인 여학생의 학교생활'이란 제목의 논문을 실으며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이 일기의 주인공은 1937년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북여고의 전신)에 재학 중이던 한 소녀다. 2월 18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약 11개월의 일상이 '대구 양문사'에서 판매된 35전짜리 일기장에 일본어 경어체로 기록돼 있다.
여기에는 학교생활, 친구 관계, 성적과 진로 등 일상의 고민뿐만 아니라, 황국신민화 교육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흔들리던 내면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매일 담임교사에게 제출해 검사를 받아야 했던 이 일기는, 당시 일제가 학생들의 일상과 사상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찰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사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속 사춘기 여학생의 삶, 교육 자료로 탄생
대구교육박물관은 사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2017년 두 차례 일본을 방문해 일기장 실물을 직접 확인하고, 복제본을 제작했다. 현재 교육역사관에 전시 중인 이 자료는 대구교육박물관의 대표 소장 자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박물관은 2018년 개관을 맞아 이 일기를 한글로 번역해 '여학생 일기'를 출간했다. 총 103쪽 분량의 번역본은 식민지 교육정책 아래 강요된 일본어 사용, 황국신민화 교육, 당시 일본인 교장 훈화 내용 등을 생생히 담고 있다.
또한, '무엇을 해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대목처럼,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사춘기 여학생으로서 느끼는 불안과 혼란, 우정과 일상의 고민이 함께 담겨 있어 독자로부터 시대를 초월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겉과 속, 기록과 감정의 이중 구조
대구교육박물관은 번역본에 머무르지 않고,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했다. 그 결과 올해 '만화로 보는 여학생 일기'를 출간하며 스토리텔링 기반의 역사 콘텐츠를 새롭게 선보였다.
교육적·역사적 의의가 높은 장면을 엄선해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성적 걱정 ▷진로 고민 ▷수학여행 ▷친구 관계 등 오늘날 청소년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중심으로 재구성해 90년 전 대구 소녀의 삶을 재조명했다.
만화는 '겉일기'와 '속마음 일기'라는 독창적인 이중 구조로 전개된다. 원본 일기와 한글 번역본 속의 기록은 당시 학생들이 매일 담임교사에게 제출해야 했던 '검사용 일기'로, 마치 숙제를 하듯 의무적으로 써 내려간 글이었다. 검열을 의식해 정제되고 단정한 표현으로 채워진 이 기록은 겉으로 보이는 '공식적인 목소리'만을 남기고 있다. 만화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겉일기'로 표현해, 통제된 시대 속에 놓인 학생의 겉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반면, '속마음 일기'는 그 안에 미처 담기지 못한 내면의 목소리를 상상력으로 복원한 것이다. 검열된 문장 뒤에 숨어 있던 소녀의 진심과 불안, 분노, 그리고 일상의 생각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그 시대 학생들이 느꼈을 법한 감정의 결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독자는 한 장면 안에서 겉일기와 속마음 일기를 교차해 읽으며, '기록된 역사'와 '숨겨진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과 디지털로 확장되는 역사 교육
대구교육박물관은 만화책과 함께 2편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함께 제작했다. 영상은 대구교육박물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누구나 시청할 수 있으며, 교실 수업과 온라인 수업에서 디지털 교육 자료로도 활용 가능하다.
또한, 만화책은 대구교육박물관 홈페이지에서도 열람할 수 있어 전국 어디서나 학생과 교사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대구교육박물관은 이를 통해 교육사 자료를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 재해석하며, 살아 있는 교육 플랫폼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를 접한 한 지역 교사는 "활자로만 배우던 역사가 당시 여학생의 생생한 목소리로 다가와 뭉클했다"며 "아이들과 함께 그 시대 학생들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이렇게 90년 전 교실에서 시작된 한 소녀의 기록은 헌책방, 대구교육박물관, 그리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거쳐 오늘의 청소년에게 다가왔다. 검열된 '겉일기'와 상상으로 되살린 '속마음 일기'가 만나며 우리에게 묻는다. "그때의 넌 어떤 마음이었을까?"
묵묵히 써 내려간 펜글씨 몇 줄이 세대를 건너 오늘의 눈빛과 마주하는 그 순간, 교육의 기록은 역사 속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현재가 된다.
홍진근 대구박물관 관장은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높은 소장 자료를 청소년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앞으로도 선보이겠다"며 "단발성 프로젝트를 넘어 지속적인 역사 교육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