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읽는 고사성어]<5>인면수심(人面獸心),"사람의 얼굴을 하였으나 짐승의 마음이다"

입력 2026-01-29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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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이태원 참사 관련 허위 사실을 유포한 70대 남성의 구속 소식을 공유하며, "인면수심도 아니고 참사 유가족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라고 했다.

인면수심. '사람 인, 얼굴 면, 짐승 수, 마음 심', "사람의 얼굴을 하였으나 짐승의 마음이다"라는 뜻이다. 인면과 수심을 바꾼 '수심인면', 수심을 '구심'(狗心. 개의 마음)으로 바꾼 '인면구심'도 있다.

인면수심이란 흉노족을 미개한 민족으로 묘사할 때 처음 등장한 말이다. 『한서』 「흉노전」에 "오랑캐들은…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을 가졌다"(夷狄之人…人面獸心)라고 했다. 이후 당나라 때의 『진서』, 『정관정요』, 송나라 때의 『주자어류』 등에도 보인다. 청나라 공위의 『소림필담』에는 "짐승의 얼굴을 하였으나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수면인심'(獸面人心)도 보인다.

수심의 수는 '금수'(禽獸)를 줄인 말이다. 먼저 '금'은 새처럼 두 발이 달린, 날아다니는 '날짐승'을 말한다. 이어서 '수'는 산에서 사는 '산짐승', 들에서 사는 '들짐승', 집에서 기르며 짐을 나르기도 하는, 네발로 기어 다니는 '길짐승' 같은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 같은 맹수도 포함된다. 기어 다닌다는 것은, 몸을 구부려 배를 바닥으로 향하고 팔다리로 짚어 오고 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직립보행을 하지만 아이일 때나 몸이 비정상일 때는 엉금엉금 두 팔 두 다리로 기어 다니기도 한다. 어쨌든 모든 짐승을 금수라고 하지만 '조수'(鳥獸)라고도 한다. 또는 금수에다 물고기・벌레를 합해 '금수어충'(禽獸魚蟲)이라고도 한다.

한편, 금수를 짐승이라고도 해서 사람을 제외한 동물을 가리키는데, '짐승'은 불교의 '중생'(衆生)에서 왔다. 중생은 인도 산스크리트어 '사트바'(sattva)의 한자 번역어이다. 『예기』나 『장자』 같은 고전에 나온다. 사트바는 '의식이나 감정을 지닌, 모든 살아 있는, 윤회하는 존재'의 뜻으로 '뭇 삶'・'여럿(=거듭) 태어남'의 의미를 포괄한다.

사트바의 다른 번역어로는 유정(有情)이 있다. '정'(감정, 의식, 마음)이 있음을 강조했지만, 귀에 익은 중생이란 말에 떠밀려 잘 쓰이지 않게 되었다. 중생은 처음에 '인간과 짐승'을 겸했다가 차츰 갈라져 중생은 사람을, 짐승은 금수를 부르게 된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무엇일까? 짐승은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인간은 본능을 넘어 이성적・도덕적으로 사고・분별하며, 나아가 영성마저 발휘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사기, 폭력, 도둑질, 살인 같은 악한 행동을 저지를 때는 '짐승 같은/짐승보다 못한/짐승보다 더한' 놈이라며 멸시하기도 한다.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영리한 만큼 그 내면을 가늠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예기』에는 "사람은 마음을 숨기므로 헤아릴 수 없다"(人藏其心, 不可測度也), 『사기』에서는 "사람 마음이란 헤아리기 어렵다"(人心難測也)라고 하였다. 이후 명나라 능몽초의 단편소설집 『이각박안경기』에서는 "사람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고, 바닷물은 재기 어렵다"(人心難測, 海水難量)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홍만종의 『순오지』에 "물의 깊이는 알아도,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水心可知, 人心難知)라거나,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처럼, 관련된 여러 말을 만들어냈다.

살아볼수록 사람의 속을 알기가 더 어렵다. 다들 얼굴은 멀쩡한데 마음속엔 어떤 짐승을 키우고 있는지 가끔 의심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