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매시장, 도요스에서 배운다"…현대화의 조건과 숙제

입력 2025-12-02 15: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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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형 구조·구역별 온도 관리로 위생 최우선…정가수의 거래 90%
소포장·소비자 공간까지 '수요자 중심'…대구시 벤치마킹 과제는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스 시장 수산물 도매동 모습. 2025.11.26. 홍준표 기자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스 시장 수산물 도매동 모습. 2025.11.26. 홍준표 기자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 사업이 최근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북구 매천동의 낡은 도매시장이 달성군 하빈면 대평지구로 자리를 옮기는 데 필요한 첫 관문을 넘은 것이다. 2032년 개장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을 두고 대구시는 "첨단 물류 기반의 새로운 도매시장 모델을 구축하겠다"며 기대감을 비쳤다.

대구 도매시장 현대화는 단순한 이전 사업이 아니다. 지역 농산물 유통 체계를 다시 짜고, 스마트 물류 산업을 육성하며,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시장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 청사진을 보다 정교하게 그리기 위해서 앞서 도매시장 이전, 현대화 과정을 겪은 '도요스(豊洲) 시장'을 찾았다. 일본 도쿄도 고토구에 자리한 도요스 시장은 2018년 문을 열었다. 이곳은 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츠키지 시장을 대체하며, 위생·물류·에너지 관리 등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진화한 도매시장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매일신문 취재진이 찾은 새벽의 도요스 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닌 '시스템'이었다.

◆새벽 5시, 참치 경매가 시작되자 시장이 깨어났다

지난달 26일 오전 5시 30분 정각. 도요스 수산동 경매장은 마치 신호처럼 단숨에 고조됐다. 육중한 냉동 참치가 일렬로 놓이고, 중도매인들은 잘린 단면에 손전등을 비춰 품질을 재며 마지막 판단을 내렸다. 경매사의 외침은 주문인지, 전통 창(唱)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짧은 손짓 하나로 가격이 정해지고, 이어지는 박수 소리가 비릿한 공기를 갈랐다.

채소·과일 거래가 이뤄지는 청과동으로 이동하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6시 30분에 맞춰 경매가 시작됐지만 이미 물량 대부분은 갈 곳이 정해져 있고, 경매는 일부 신규 물량에만 적용됐다. 일본 도매시장의 핵심인 '정가수의'(정해진 가격 거래)가 작동한 결과다.

도요스에서는 전체 거래의 약 90%가 정가수의다. 정교한 등급제·철저한 온도 관리·생산지와의 장기 신뢰가 쌓여야 가능한 구조다.

스나카 토모키 도요스 시장 과장대리는 "청과동 전체로 보면 거의 전량이 정가수의로 움직인다"며 "경매는 가격이 낮게 형성될 가능성이 있어 생산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가수의가 가능한 이유는 품질 규격이 명확하고, 산지 조직과 도매법인 간 사전 협의가 오래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스 시장 수산물 도매동 모습. 2025.11.26. 홍준표 기자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스 시장 수산물 도매동 모습. 2025.11.26. 홍준표 기자

◆폐쇄형 구조·구역별 온도 통제…"위생·품질이 설계의 시작점"

도요스 시장의 핵심은 '폐쇄형 구조'다. 외부 오염원을 철저히 차단하고, 모든 물류 동선이 온도 관리 체계 안에서 움직인다.

토모키 과장대리는 "도요스 시장은 음식 안전과 안심을 가장 우선에 두고 설계됐다"며 "외부 공기를 최대한 차단하고, 구역별로 적정 온도를 유지한다는 점이 기존 도매시장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옥상 태양광 설비, 자연에너지 활용, 냉장·저온 구역의 일원화된 관리 시스템 등은 '도매시장 현대화의 기준'을 실감케 했다.

토모키 과장대리는 "효율적 물류 실현을 위한 새로운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며 도요스 시장은 만들 때부터 효율적 물류를 고려해 만들어졌다. 도매법인이나 중도매인들이 업무하는 곳에 소분하고 적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지역과 연계해 활력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장 내 일부 구역은 민간에 분양하고 있으며 시장을 둘러싼 형태로 공원이 위치한다"고 덧붙였다.

도요스 시장을 둘러보며 이채로웠던 점은 도매시장임에도 '바로 소매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소포장 상품'이 널려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소포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특정 형태로 저장이 가능한 창고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일본 도매시장이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상징적 장면이다.

야마코시 마사히로 도요스 시장 과장대리는 "츠키지에는 없던 소분·가공 기능을 토요스 이전 시점에 반영했다"며 "청과동 3층에 세척·소분·포장 시설이 있어,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이 즉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 방식 역시 팔레트 규격화를 기본으로 해 물류 속도를 높였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시스템도 거래의 효율을 뒷받침했다.

포장, 가공시설이 같은 건물에 있으면 위생상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도요스 시장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토모키 과장대리는 "수산물로 예를 든다면 수산 쪽 도매시장에서 중도매 쪽으로 수산물이 넘어간다. 거기서 한 번 더 4층으로 넘어가는 통로가 있는데 거기서는 넘어가는 곳만 통로가 있고 거기서 완결된다"며 "거기서 되돌아가는 것은 없다. 하나의 공장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소포장 농산물이 쌓인 창고, 시장 안의 레스토랑과 소비자용 매장, 관람객 동선을 위한 견학 코스까지 '열린' 공간이면서도 '폐쇄형 관리'를 구현하는 독특한 시장 구조가 도요스 시장을 대체 불가한 사례로 만들었다.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스 시장 청과동 모습. 2025.11.26. 홍준표 기자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스 시장 청과동 모습. 2025.11.26. 홍준표 기자

◆대구형 도매시장은 무엇을 가져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현재 대구시가 그리는 새로운 도매시장의 밑그림은 일본식 모델과는 결이 다르다. 대구는 '디지털 전환형 유통 혁신'을 내세운다.

시는 신축 이전할 대평지구 부지 27만8천26㎡에 건축 연면적 15만5천654㎡ 규모로 도매시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내진 설계를 반영하며 최첨단 방재 시스템, 악취·오염 저감시설, 친환경·에너지 절감형 설비 등을 적용해 안전성을 높일 계획이다. 그 안에는 ▷온라인 거래소 ▷전자 송품장 ▷빅데이터 유통정보 시스템 ▷출하·배송 통합관제 ▷온라인 물류센터(선별·가공·소분·택배 지원) 등을 채울 생각이다.

일본 도매시장은 '표준화·정가수의·폐쇄형 관리'로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했다. 반면 대구시는 '경쟁·디지털 투명성·개방성'을 통해 유통비용을 낮추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대구 도매시장 현대화의 성공 여부는 '도요스식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한국이 가진 디지털 역량과 도요스가 보여준 위생·표준화 철학을 어떻게 접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스 시장 외관. 2025.11.26. 홍준표 기자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스 시장 외관. 2025.11.26. 홍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