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보면서 인생과 고통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 회장도 관련 비리로 옥고를 치를 때만 해도 '이재용의 삼성'은 성장에 대한 기대보다 '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하지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이 회장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 서울 강남에서 치맥을 즐기며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의 새로운 핵심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가 윤석열 정부 초기보다 2배 가까이 뛰어오른 건 덤이다.
이 회장은 어찌됐든 자신의 인생에서 겪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고통'이라는 것을 극복해 낸 뒤 자연스럽게 돈을 버는 운기를 타고 오르는 기회를 맞았다. 이 회장의 최근 10년간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의 본뜻을 생각하게 한다.
최근 사교육 시장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됐다. 초등 의대반은 이미 구문(舊聞)이고 유명 사교육 강사들이 참여하는 TV 예능에서도 선행학습은 기정사실에 필수 코스로 취급받고 있다. 선행학습이야 할 수는 있다. 방학 때 다음 학기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미리 예습하는 걸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해석하는 것은 과하지 않은가.
미혼인 자가 자식 있는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겠느냐마는 부모들이 선행학습을 시키는 이유는 자녀들이 앞으로의 교육과정에서 학습의 뒤처짐으로 인한 고통을 겪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이런 부모들이 한 가지 간과하는 게 있다. 이 회장의 예시처럼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도 어떻게든 인생의 고통은 한 번 이상 겪고 간다는 사실이다.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과 이재용 걱정'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돈과 명예를 태어날 때부터 쥐고 난 것처럼 보이는 이 회장도 그 나름의 고통을 겪는데 우리와 우리들의 아이가 고통을 피해갈 방법도 이유도 없다.
어쩌면, 나중에 못 배운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선행학습을 한답시고 수학학원에서 미분 문제를 풀고 있는 초등학생에게는 그 상황이 자기 인생에서 최대로 고통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 부모들은 오늘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차 안에서 "앞으로의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지금의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훈계 내지는 위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부모들은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 고통은 예방으로 극복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통이 예방으로 극복되는 개념이라면 그 누구도 스스로 생을 놓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고통은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다. 대처를 잘 하면 극복되고 대처를 잘 못하면 삶이 무너진다. 고통을 견뎌 내는 문제에 있어 타고나는 천재는 없기에 어차피 우리는 고통을 겪어가면서 대처법을 배워야 한다.
선행학습으로 미분을 풀고 자신이 쓰지도 않는 단어를 영어 단어로 바꿔 외워야 하는 아이들은 이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지 심히 궁금해진다. 하필 그 고통을 준 대상은 '고통을 겪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을 온전히 담아 사랑으로 자신을 보살피는 부모다. "자식 없다는 인간이 쓸데없이 뭔 걱정이냐" 하겠지만, 이 아이들 중 누군가는 나와 같이 일하게 될 것이기에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