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마경대]시민 뜻 외면한 통합 축제가 낳은 참사

입력 2025-11-03 18:06:21 수정 2025-11-03 19: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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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대 사회2부 기자
마경대 사회2부 기자

지난달 26일 막을 내린 '2025 경북 영주 풍기인삼축제'와 '영주장날 농특산물대축제'의 통합 개최가 시민들로부터 정체성이 실추되고 농가 수익이 오히려 반감됐다는 싸늘한 평가를 받았다.

명분 없는 통합과 일방적 추진이 결국 지역의 정체성 혼란과 축제 흥행 실패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영주시는 축제를 마치며 "풍기인삼과 영주 농특산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뜻깊은 축제였다. 문화 관광의 잠재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평가했지만, 현장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반응은 전혀 딴판이었다.

시민 A(58·영주시 풍기읍) 씨는 "지난해까지 각각 치러진 축제보다 통합 축제가 오히려 관람객이 없어 썰렁한 분위기를 면치 못했다"며 "농가 수입도 반감되는 실속 없는 축제였다"고 꼬집었다.

참여 농가들도 "도심과 떨어진 풍기읍은 평일 유동 인구가 적어 판매 효과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축제 자체도 문제지만 축제 관계자들과 소통 없는 행정 절차도 논란이 되고 있다.

영주시는 올해 두 축제를 병합·이전하면서 시의회와 문화관광재단, 축제조직위원회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지난 9월 18일 시청 강당에서 열린 인삼축제 준비상황 보고회에서 유정근 영주시장 권한대행이 "올해 풍기인삼축제와 영주장날 농특산물대축제를 10월 18일부터 26일까지 풍기읍 남원천과 인삼문화팝업공원에서 공동 개최한다"고 발표하자, 참석자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한 참석자는 "사전에 어떤 논의도 없었다. 깜짝 놀랐다"며 "누구 뜻에 따라 어떤 식으로 결정된 것이냐"고 관계자들에게 항의했고, 김병기 영주시의회 의장은 "의회 보고도 없이 누가 결정했느냐"고 질책했다. 유충상 시의원은 "두 축제를 병합하면 인삼축제의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특산물대축제는 매년 영주 시가지 중심부인 서천둔치에서 열렸고, 올해 예산 승인 과정에서도 같은 장소로 확정돼 있었다. 그러나 시는 내부 결재만으로 행사 장소를 풍기읍으로 변경했다.

일각에서는 "부실하게 운영돼 온 농특산물축제를 인삼축제에 끼워 넣어 문제를 덮으려 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행정 독주'에 있다. 시의회, 문화관광재단, 축제조직위원회 등과 사전 협의 없이 내부 결재만으로 축제를 병합·이전한 것은 민주적 절차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예산 심의권을 가진 시의회를 무시한 결정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제도적 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시민과의 소통 부재도 뼈아프다. 축제는 행정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의 자산이다. 농민과 상인, 시민의 참여와 공감이 빠진 축제는 아무리 화려한 홍보를 덧입혀도 껍데기에 불과하다.

영주 도심 중심부에서 열리던 행사를 풍기읍으로 옮긴 것도 현장성과 접근성을 무시한 탁상행정의 전형이었다. 실제로 판매 부진과 방문객 감소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영주시의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집행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시의회가 방관하며 사실상 면죄부를 준 꼴이다. 민주적 견제 장치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신뢰는 회복할 수 없다.

축제는 도시의 얼굴이자 시민의 자존심이다. 그러나 이번 영주시의 축제는 지역의 자긍심을 드러내기는커녕 행정의 독선과 소통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주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운영 미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의견이 배제된 행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