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제2기 행정부가 들어선 지도 8개월째이다. 무(無)원칙의 관세 협상과 이민 정책의 집행 남용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자신이 형성해 온 국제(법)질서를 스스로 뒤집고 있으니, 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고립주의'(Isolationism)를 통해 국력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려 왔다. 특히 1990년대에는 유일의 패권국으로서 군림하기도 했다. 미국은 부자 나라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국가의 모델로서, 세계가 부러워한 대상이었다. 집집마다 보유했던 자동차들로 대변되는 물질적 풍요, 대화와 설득의 정치 시스템, 세계의 경찰국가로서의 기능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따라서 세계의 많은 국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식 국제질서에 젖어 갔던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이미 부의 상징성을 잃었고, 대화와 설득의 정치는 실종되었으며, 국제(법)질서는 스스로에 의해 밥 먹듯이 위반되고 있으니, 미국의 시대도 서서히 저무는 모양이다. 국제분쟁으로부터의 개입을 줄이면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 보호에만 열을 올리는 '신(新)고립주의'를 기조로 하는 트럼프의 소(小)왕국은 제멋대로 부과된 관세, 국경 벽의 강화, 팬덤(fandom) 정치와 갈라치기 정치 등을 생일상으로 차려 폼나는 잔치를 열려고 하는 듯하다. 생일잔치가 풍성할수록, 그만큼 미국의 권위와 위상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의 '트럼프 현상'은 트럼프 개인의 특성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트럼프와 같은 사고가 미국 대중에게 물들여져 있으니,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바뀐다고 미국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에는 '트럼프화'가 거대하게 물결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구호,'MAGA'(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진정으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각국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이 급선무이며, 동시에 국제(법)질서의 준수가 전제되어야 한다. 어쩌면 인공지능(AI)이 가져올 대변혁의 시대에, 트럼프 대통령이 외쳐야 할 것은 마가(MAGA)가 아니라 메가(MEGA·Make Earth Great Again·다시 지구를 위대하게)이다. 지구의 경쟁력을 키우고, 통합을 이끌고, 그래서 종국적으로 '우주로 나아가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된 지 약 70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화성 이주 계획'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이 몽상가의 부질없는 생각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317명이 구금되었던 조지아 배터리 공장 사태를 경험하면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작동하는 '신(新)국제질서'를 다시금 생각한다. 동시에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정치에 대화와 설득이 사라진 지 오래고, 국민은 보수와 진보로 극명히 갈라져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고 천명했지만, 선출 권력의 우위 주장이나 대법원장 사퇴 논란 등은 대통령의 말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한쪽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은 '진보 또는 보수의 영광을 위하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하여'를 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