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이상원] 유영국 화백 생가에서

입력 2025-08-24 15:57:33 수정 2025-08-24 18:35:00

이상원 사회2부 기자
이상원 사회2부 기자

경북 동해안 끝자락에 위치한 울진에 가면 유영국(1916~2002) 화백의 생가가 있다. 유영국은 울진이 낳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개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인정받는 화가다. 그러나 정작 그의 고향인 울진에서는 명성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울진군은 세계적인 화가의 고향이라는 훌륭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울진의 산과 바다를 벗 삼아 자랐고, 그의 작품에는 산과 바다, 하천 등 고향 울진의 자연이 선·면·색으로 함축돼 추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가는 그러한 자연 영감의 원천이자 예술적 뿌리를 상징하고 있는 곳이다.

울진군은 지난 2018년 생가를 사들여 보존한 데 이어 2022년 유영국 서거 20주년을 맞아 생가를 기념관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 진전된 것이 없다. 울진읍에 있는 유영국 생가는 깔끔하게 새 단장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생가의 대문도 굳게 닫혀 있는 데다 찾는 이도 전무한 실정이다. 새 단장만 됐을 뿐 유품이나 작품 한 점 없이 덩그렇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유영국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화가 등은 각자의 생가에 유품과 작품 등이 전시돼 지역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하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고흐, 뭉크, 피카소 등 세계적으로 친숙한 유명 화가들 생가에도 그들의 삶과 작품 세계, 고향의 정서를 느끼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울진군도 유영국이라는 대가의 생가를 기념관이나 미술관으로 확장시켜 울진을 대표하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생가에서 직접 화가의 삶의 발자취를 느껴 보고 작품을 마주하는 것은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를 위해서는 그의 유족이 운영하고 있는 서울의 유영국미술문화재단과 손을 잡고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예산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면 한수원 지원사업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당연히 군민들과의 공감대 형성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

울진(蔚珍)은 이름 그대로 산천이 웅장하고 금은보화가 풍부한 지역이다. 이를 널리 알려야 한다. 단기적인 이벤트성 관광에서 벗어나 울진만의 자연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지속 가능한 관광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그 중심에 유영국 화백의 생가 활성화가 선행돼야 한다. 유영국 생가를 관람하기 위해서라도 관광객이 일부러 울진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령 울진의 자연과 유영국의 예술 세계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관광 코스 개발, 유영국 아트페스티벌을 만들어 지역축제화하는 방안, 그의 작품을 활용한 예술 체험 프로그램 개발 등 생가 활성화 전략이라는 큰 틀만 세워진다면 그 속에 담을 소재 개발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울진군은 기존의 원전산업에 이어 관광산업 활성화를 먹거리로 삼아 '1천만 관광객 유치'라는 거대한 숙제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관광객 1천만 명 유치를 위해서는 흥미로운 놀거리와 즐길거리, 맛있는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울진을 빛낼 수 있는 '유영국 생가'라는 훌륭한 문화 콘텐츠를 잘 활용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 울진군은 유영국 화백의 생가 활성화가 1천만 관광객 유치의 훌륭한 자양분이자 군민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