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행적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대통령 당부에도 반대 행보
이달 8일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간 3자 회동에서 정청래 대표는 장동혁 대표와 악수했다. 그간 야당 지도부와 악수조차 거부해왔던 그의 변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인 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정당해산 가능성"을 경고했다.
3자 회동에서 이 대통령이 "정 대표님은 여당이신데 더 많이 가졌으니 좀 더 많이 내어주시면 좋겠다"고 말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24시간도 안 돼 '야당 해산'을 거론, 대통령의 당부와 거리를 둔 채, 힘으로 밀어붙일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 李 신중론, 鄭 강경 일변도
정청래 대표는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권력 집중으로 인한 권한 남용 방지 대책이나 수사권을 원활하게 운용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 대표는 "어제 개혁했으니 오늘은 개혁하지 말자는 주장은 개혁에 대한 몰이해"라고 발언했다.
▶정청래 대표의 독자 노선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엇갈리는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통령은 '굿캅', 정 대표는 '배드캅'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일련의 기류를 보면 정 대표가 독자 행보에 나서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과거 '사이다 이재명' 이미지를 본인에게로 옮기기 위해 강성 행보를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후 '이재명 총통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며 5년 임기를 넘어,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대통령이 강력한 대중적 지지 기반을 갖고 있고, 국회내 민주당의 압도적 의석, 당내 친명계 의원 대거 포진, 국민의힘 분열이 그 배경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출범 석달을 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세간에는 명나라(이재명 대통령) 위에 청나라(정청래 대표)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떠돈다.
▶ 성공한 쿠데타와 실패한 도전
중국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당나라 고조 이연의 둘째 아들로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보였다. 그는 황태자인 형 이건성 및 동생 이원길과 갈등이 심화되자, 현무문에서 형제들을 살해하고 아버지로부터 황위를 양위받아 당 태종이 되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자 쿠데타이다.
최고 권력을 넘보다가 실패한 사례도 많다.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카 도요토미 히데쓰구(豊臣秀次, 1568~1595)를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았다. 그러나 도요토미가 말년에 아들 히데요리(豊臣秀頼)를 얻자 양자인 히데쓰구의 후계자 입지가 흔들렸다. 이에 히데쓰구는 후계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측근들과 움직임을 보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를 반역으로 몰아 처형(자결 명령)했다.
▶겉으론 협력하지만 내부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가 각자 중심이 되려 한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물론 이 대통령이 정 대표의 지분을 인정하고 양보하거나 정 대표가 대통령의 힘에 엎드린다면 충돌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 대표는 차기 대권을 위해 자기 세력 구축을 꾀할 것이고, 이 대통령은 임기 내내 당정 일체로 국정을 이끌고, 퇴임 후에도 정치보복 걱정이 없도록 친명계 의원을 국회에 대거 심어두려고 할 것이다. 두 사람이 겉으로야 협력하겠지만 격렬하게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2028 총선 당정 갈등 불가피
내년 지방 선거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간 큰 충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28년 총선 정국이 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이 대통령은 친명계를 지키려 할 것이고, 정 대표는 자기 세력을 구축하려 할 테니 말이다.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공천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김건희 특검을 계기로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처벌 받는 선례(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명태균씨를 통한 공천 개입 논란)가 생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청래 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도 이 대통령이 견제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만약 2028년 총선에서 정청래계가 대거 공천을 받는다면, 그 상황에서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다면 민주당내 '친명체제'는 급속히 힘을 잃게 된다. 그럴 경우 이재명 정부는 정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에 속절 없이 끌려다닐 수도 있다. 그렇게 되도록 이 대통령이 손 놓고 있을까?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이 대통령은 어떤 전략을 쓸까?
▶조국 사면 전략인가, 굴복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특별사면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개적 요구, 조국혁신당의 지난 대선 불출마에 대한 보답 요구 등 정치적 압력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조국 사면에는 또 다른 전략적 배경이 있었다고 본다. 조국 비대위원장을 사면함으로써 '정청래-조국'간 충성 경쟁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청래 대표는 물론이고 조국 비대위원장 역시 강공(검찰청 폐지)으로 전격전을 펼치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공통 지지층을 자신에게 끌어모으려는 의도라고 본다. 두 사람 모두 이재명 대통령을 예우하면서도 시선은 지지층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정청래·조국·김민석 경쟁 구도
현재는 정청래, 조국, 김민석이 여권의 차기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셋 모두 대통령과 한편이라고 주장하지만, 속내를 알 수는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들 중 누구를 밀고, 누구를 견제할까. 만약 이 대통령이 정청래 대표와 조국 위원장을 누르려 한다면 통할까? 정청래 대표와 조국 위원장의 경쟁에서는 누가 승리할까. 조국 사면과 정치 복귀, 강성 정청래의 초반 스퍼트로 범여권 정치판은 매우 흥미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