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
병오년(丙午年)이 밝았다. 말의 해라서 그런지 인사말에 말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말은 자유와 구속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의 군마도 그랬지만 현실 속 경주마는 제 의지로 뛰지 않는다. 경주마에겐 안장이나 재갈은 물론 요즘엔 옆과 뒤를 보지 못하도록 차안대(遮眼帶)도 씌운다. 말에게 허용된 건 오직 직진이다.
그래도 구속은 좀 심한 말 아니냐는 당신에게 묻는다. 초원을 질주하는 야생마를 경주마로 길들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경마장에 가서 말을 볼 수 있다. 화려한 조끼를 입고 로켓 문양의 헬멧을 쓴 기수가 박차를 가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처럼 근사한 질주를 보며 '불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말(馬) 못지 않게 말(言) 역시 힘이 세다. 그리고 그 또한 자유와 구속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말(言)이라고 다르지 않다. 종달새의 그것처럼 자유로운 노랫말 혹은 소신껏 불의와 거짓을 꾸짖는 말이 있는가 하면 혹시나 지금 올리는 글이 어떤 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사회적 이슈가 되고 급기야 사이버레커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사회적 페르소나로서 내뱉고 마는 말이 있다. 둘의 차이는 극명하다. 전자는 말하는 이와 말 간에 위화감이 없다. 후자는 둘이 기름과 물처럼 겉돈다. 이대로 가면 기름은 기름끼리 물은 물끼리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앞뒤 따지지 않고 직진하거나 남의 것을 흉내 내는 게 수월하고 또 권위 있는 말의 가락을 본인의 성대에 장착하는 게 편하다면 당신은 경마장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 당신에게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상기시키고 싶다. 말인즉슨 표현에 따라 말의 의미는 달라진다는 것인데 표현의 주체가 자기자신이어야 된다는 전제가 있다. 특히나 당신처럼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언젠가 당신은 김유신이 말을 벤 유명한 고사를 말한 적이 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말에게 의지가 있었는가? 의지가 아니라 김유신의 의도가 있었겠지. 그런즉 김유신이 베어야 할 건 말의 목이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이어야만 했다. 요컨대 말에겐 죄가 없다. 말을 부리는 사람이 문제이지. 말(馬)이든 말(言)이든 말이다.
새해에는 저마다의 말을 자유로이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직진이 싫증나면 에움길을 걸으며 중얼거리거나 때로 속엣말을 힘차게 토해내도 좋을 것이다. 또 더러는 말(馬)과 인간이 서로의 말(言)을 공용어로 쓰는 걸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