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 4월7일자 본지의 '헌재의 윤석열 파면이 열 미래 역사'라는 칼럼에서 1923년 뮌헨 맥주홀 폭동으로 기소(반역죄)돼 국외 추방의 위기에 몰렸던 아돌프 히틀러가 어떻게 그 사법적·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소개한 바 있다. 그 뒷 이야기를 소개하면, 재판장 게오르크 나이트하르트의 호의로 국외 추방을 모면한 히틀러는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히틀러가 총리가 된 후 나이트하르트는 바이에른 대법원장에 임명됐고, 1937년 퇴임식에서는 '나이트하르트가 전 생애동안 보여준 무조건적 애국심'을 칭찬하는 히틀러의 편지가 낭독됐다. ('독재자들', 리처드 오버리)
이재명 대통령이 김상환 전 대법관을 헌법재판소장에 앉힌 것은 이와 똑같은 개인적 보은(報恩)으로 볼 수 있겠다. 김 소장은 2020년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친형 강제입원 관련 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아 지사직을 내려놔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대법원이 당시 권순일 대법관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TV토론에서 돌발적 질문에 대한 답변은 거짓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을 때 그 중심에 섰던 인사다.
이런 사실이 켕겼는지 이 대통령이 김 전 대법관을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했을 때 대통령실은 "헌법과 법률 이론에 해박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헌법 해석의 통찰력을 더해줄 적임자"라고 '쉴드'를 쳤지만 그런 자질을 갖춘 법조인이 어디 김 소장 뿐이겠나.
심각한 것은 공직이 '보은'을 넘어 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현재 대통령실과 정부 기관의 요직에 기용된 이 대통령 사건 관련 변호인은 모두 8명이다. 이들 이외에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된 변호인도 4명에 이른다. 이들 모두 민주당 강세 지역에 공천을 받았다는 점에서 국회의원직에 '임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이들을 왜 정부 요직이나 국회의원에 박았을까? 기자의 '뇌피셜'일 수도 있겠지만 변호사비 대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회의원이 임기 4년간 받는 세비는 5억원이 넘고 재선할 수도 있다. 정부 요직에 기용된 변호인도 이재명 정부 5년간 자리를 유지하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 계속 공직에 있는다고 가정할 경우 국회의원보다 많을지 적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당한 수입이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 재판은 모두 중지됐지만 무려 5개나 됐다. 여기에 드는 변호사 비용은 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공직 기용은 변호비용 전액 또는 일부를 '퉁' 친 것, 즉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아니냐는 의심은 충분히 해볼 수 있다.
일부 사학자는 고종(高宗) 치하의 조선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개념 정리한 '국가가 군주의 세습 재산으로 취급되는 가산제(家産制) 국가'였다고 진단한다. 가산제 국가를 규정하는 범주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매관매직이다. 공직 역시 군주의 사적(私的) 재산이기 때문이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조선 왕조에서 국왕의 매관매직은 성리학적 왕정 윤리가 중앙정치를 강하게 규제했던 18세기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으나 고종 대에서 이런 윤리가 무너졌다.
고종 부부는 관직마다 공정 가격까지 정해놓고 팔아먹었다. 구한말 교육자·언론인이었던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에 따르면 관찰사는 5만 달러 정도였다.('대한제국멸망사', 신복룡 옮김) 또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감사(監司)와 유수(留守)는 엽전 100만에서 40~50만, 처음 관직에 나서는 초사(初仕)는 5천~1만 꾸러미였으며, 과거(科擧) 통과도 대과(大科)는 5만~10만, 소과(小科)는 2만~3만 꾸러미라고 전한다. ('오하기문〈梧下記問〉, 김종익 옮김) 이렇게 챙긴 수입은 정부의 공식 재정이 아니라 고종 부부의 비자금으로 들어갔다.('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 김용삼)
기자가 보기에 고종의 매관매직과 이 대통령의 자기 사건 관련 변호인의 공직기용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대한민국이 시간을 거슬러 '가산제 국가 조선'으로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기자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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