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재진 북부지역취재본부장

'독수독과'(毒樹毒果), '독이 든 나무에 열린 과일은 독 과일이라 먹을 수 없다'는 말이다.
형사소송에서 불법 수집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 능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독수)에 의해 발견된 제2차 증거(독과)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례에서 유래했으며, 한국도 이를 형사소송법상의 증거 법칙 원칙으로 삼고 있다.
지난 6월 19일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임종식 경북도 교육감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 사건에서 임 교육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1심에서 받은 유죄를 모두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수사 개시의 단서가 된 휴대전화 전자정보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 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2심 재판부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기초로 한 검찰의 사건 수사와 '위법 증거로 받은 피의자 진술조서' 등을 근거로 한 검찰의 기소를 '독수독과'의 대표적 위법 사례로 판단한 것이다.
2007년 개정돼 형사소송법에 명문화된 '위법수집 증거능력 배제 원칙'을 적용해 검찰의 수사 행태에 일침을 가한, 원칙론적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판부에 따르면, 임 교육감 사건의 개시는 수사기관이 제 3자에 대한 부패방지 사건의 압수·수색영장에 기초해 압수한 교육청 간부의 휴대전화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별개의 정보.
검찰은 별개의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영장발부 등 절차 없이 사건 수사 개시에 필요한 정보를 탐색해 '영장주의 내지 적법절차'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수사 개시의 단서가 된 '교육청 간부의 휴대전화 전자정보'도, 이를 기초로 한 2차적 증거들인 진술조서·피의자신문조서·압수물·피고인들 및 원심 증인들의 각 원심 법정진술 등도 모두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해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검찰의 행태에 대해 수사 과정의 위법 행위를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위법 수집증거 배제법칙'의 취지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수사기관이 절차를 어기고 위법한 수사와 기소를 한 대가였고, 법원은 '독수독과'의 원칙을 지킨 것이었다.
"살아가면서 빚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임종식 교육감이 2심 판결 직후 자신의 SNS에 올린 한 줄의 이 글은 그가 지난 시간을 어떻게 견뎌 왔는지를 가늠케 한다. 말은 짧았지만 울림은 컸다.
그를 둘러싼 사건은 1심에서 일부 유죄로 판단되며 경북교육 전체를 흔들었고, 교육청 내부는 말할 수 없는 혼란과 침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번 판결은 임 교육감 개인의 명예 회복 신호탄에 그치지 않는다.
위축됐던 경북 교육의 행정력과 교육 정책의 정당성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됐다.
2심 판결 선고 직후 경북교육청 곳곳에서 직원들이 함성을 질렀다.
경북교육 수장의 유죄로 움츠리고, 힘들어했던 직원들도 함께 무죄를 맞이한 날이었을 게다.
검찰은 무죄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제 대법원이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독수독과 이론'을 원칙론적으로 적용한 2심 재판부의 판결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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