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 프레임 밖으로,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입력 2025-05-23 15:15:26 수정 2025-05-23 16:35:59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붐비는 골목길을 지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하태길 영남대 겸임교수
붐비는 골목길을 지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하태길 영남대 겸임교수

에펠탑 2층에서 바라본 파리는, 섬세하게 정돈된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그 끝자락에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하얗게 빛났다. 당장이라도 언덕 위 성당으로 날아가고 싶은 기분에 서둘러 우버를 불러 앙베흐(Anvers)역으로 향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길을 걸어가다 회전목마를 찾았다. 그 뒤로 펼쳐진 가파른 계단 위로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었다. 푸니쿨라를 타고 천천히 오르자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도착했다. 쌀쌀한 겨울 날씨 때문에 파리의 윤곽은 흐릿했지만, 이상하게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이 불분명한 전경이 화가들의 상상력을 더 자극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대성당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명작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테르트르 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라이브 드로잉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화풍을 즐겁게 비교했다. 그리고 나와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은 후, 특정 화가를 선택해 '나만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그림이 완성 되어가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 시간이 이 경험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미 완성된 그림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참여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 마케팅(Experiential Marketing)이었다. 광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오픈 스튜디오처럼 기능하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참여하고 싶어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이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처럼 만들고, 자신만의 강점과 개성을 드러내어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하는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작가들은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초상화를 의뢰한 방문객들과 소통하고, 완성된 그림을 SNS에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작품과 계정을 홍보한다.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풍경. 몽마르트르의 전통적인 예술 문화가, 현대적인 마케팅 방식과 결합해 또 다른 형태의 예술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테르트르 광장을 지나자, 골목길 끝에 있는 붉은색이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까페 르 콩슐라(Le Consulat)'와 에스까르고 맛집으로 유명한 '라 본 프랑케트(La Bonne Franquette)'가 마주 보고 있었다. 두 건물의 외벽에는 화가들의 초상화가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이곳이 과거,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디아즈, 피사로, 시슬리, 세잔, 로트렉, 모네 그리고 고흐 등 가난했던 화가들이 이곳에서 밤늦도록 그림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에스까르고를 주문했다. 한입 베어 물었더니 마늘 버터 향이 입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화가들이 보았을 몽마르트르의 밤을 상상했다.

마르셀 에메의 벽을 지나가는 남자. 하태길 겸임교수
마르셀 에메의 벽을 지나가는 남자. 하태길 겸임교수

다시 길을 걷다 기묘한 벽을 마주했다. 벽을 뚫고 나오다 도중에 갇혀버린 남자. 그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 '벽을 지나가는 남자'의 주인공이었다. 벽을 통과하는 능력은 오랫동안 상상력의 상징이었고, 여러 광고에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나이키의 'Run Through The Wall' 광고에서는 마치 주자가 실제 벽을 뚫고 나오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한계를 돌파하는 도전 정신을 시각적인 방식으로 강조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투명한 벽' 캠페인은 운전자와 보행자가 교차로에서 벽 너머의 상황을 미리 볼 수 있도록 설계하여 브랜드의 혁신성과 안전에 대한 헌신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그런데 진짜 벽은, 물리적인 것이 아닐지 모른다. 서울 상암동 MBC 앞 조형물 '스퀘어-M'은 빨간 프레임 속에 마주 선 두 사람을 통해 미디어 시대의 소통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들의 손끝은 닿지 않는다. 프레임은 연결을 시도하는 동시에 거리감을 만든다. 마케팅도 이와 흡사한 면이 있다. 브랜드는 자신이 설정한 메시지와 매체라는 프레임 안에서 소비자에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는 그 바깥에 서 있다. 익숙한 방식의 접근, 반복되는 문구는 이제 설득력이 없다. 벽을 지나가는 남자는 더 이상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세상과 자유롭게 연결된다. 브랜드의 벽을 넘어, 소비자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진짜 소통은 프레임 밖에서 시작된다. 손끝이 닿는 마케팅은 벽을 먼저 넘은 이의 보상인 것이다. 나는 진지하게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마르셀 에메의 기발한 창의력이 벽을 뚫고 내게도 닿기를 바라며.

몽마르트 골목 곳곳에서 동시대 예술 감성이 살아있는 그래피티 아트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예술과 상업을 자연스럽게 연결한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예술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래피티, 지역 와인바와 협업하여 QR 코드를 통해 레스토랑의 역사와 메뉴를 소개하는 그래피티도 있었다. 예술은 갤러리에서 거리로 뛰쳐나왔고 프레임 밖의 삶 속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랑해 벽(Mur des Je t
사랑해 벽(Mur des Je t'aime). 하태길 겸임교수

구글 지도를 보며 사랑해 벽(Mur des Je t'aime)을 찾아갔다. 파란색 타일 위에 세상의 모든 언어로 '사랑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쓰인 '사랑해'를 찾으며 웃었고, 사진을 찍었고 기념품 구매도 주저하지 않았다. 도심 속 열린 공간에서 경계를 허무는 예술, '사랑'이라는 글자를 찾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공간! 나도 한국어를 찾아보았다. '사랑해' '나 너 사랑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찾아서 읽어보았다. 그 뭉클한 순간, 나도 예술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감정이 언어 너머로 찾아왔다.

몽마르뜨르 언덕 르픽 거리에는 빈센트 반고흐와 동생 테오가 함께 지냈던 집이 있었다. 반고흐는 이곳에서 보낸 2년여 시간 동안 독특한 화풍과 붓 터치를 창조해냈다.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어둡고 우울했던 그림이 밝고 강렬한 분위로 변했다고 한다. 몽마르트르의 일상적인 풍경과 사람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골목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반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나는 파리 북쪽,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반고흐의 마지막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아즈 교회의 쓸쓸한 겨울. 하태길 영남대 겸임교수
우아즈 교회의 쓸쓸한 겨울. 하태길 영남대 겸임교수

기차는 작은 시골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에 멈춰 섰다. 이곳은 빈센트 반고흐가 생의 마지막 70여 일을 보낸 곳이다. 마을은 조용했고, 겨울 공기는 날카롭게 맑았다. 나는 우아즈 교회를 지나 그가 마지막으로 붓을 든 장소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도착했다. 겨울이라 바람에 흔들리는 밀은 없었지만 까마귀는 그림처럼 날고 있었다. 한때 절망과 광기에 휩싸였던 반고흐가 밀밭 사잇길을 따라 어디론가 가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을 때, 나는 화가 이중섭이 아내에게 쓴 편지가 떠올랐다. 이중섭과 반고흐는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 있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과 가족을 향한 깊은 애정을 편지에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고, 편지는 삶의 마지막까지 예술을 사랑하고 가족을 그리워했던 한 인간의 진솔한 기록으로 남았다. 두 사람 모두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후에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반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묘지에 도착했다. 반고흐의 사후 명성이 높아지자,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남편의 유해를 반고흐 곁으로 데려올 수 있게 힘을 썼다고 한다. 형제가 함께 있는 이 묘지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베르쉬르우아즈를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 역시 조용히 서서 두 사람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날 반고흐의 흔적은 예술 유산을 넘어 브랜드와 지역 문화, 관광이 어우러진 헤리티지 마케팅(Heritage Marketing)의 대표 사례로도 주목받고 있다.

2017년 묘지가 폭우로 손상되었을 때, 이를 보존하고 개선하기 위한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 반고흐 팬들과 예술 애호가들이 참여하여 큰 관심을 모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예술가의 유산이 박물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였다. 그뿐 아니라, 2020년에는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반고흐의 마지막 작품인 나무뿌리(Tree Roots)가 그려진 정확한 장소가 발견되었다. 이 발견을 기념해서 반고흐의 시선을 따라 직접 그 장소를 체험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그의 마지막 붓질이 닿았던 땅 위를 걷는 것은 한 예술가의 생의 마지막 장면을 함께 밟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붓 하나를 손에 든 반고흐 동상. 하태길 영남대 겸임교수
붓 하나를 손에 든 반고흐 동상. 하태길 영남대 겸임교수

마을 안쪽에는 반고흐 공원이 있었다. 그곳에는 붓 하나를 손에 든 가난한 화가 반고흐 동상이 서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그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권했다. 마을 곳곳에는 반고흐의 그림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우아즈 교회, 시청사, 라부 여인숙 등이 그림 속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마을 전체가 반고흐와 함께 영원히 살고 있었다. 우울한 겨울 날씨는 살아생전 성공하지 못했던 가난한 화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는 다시 우아즈 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시절 반고흐가 타고 왔을지도 모를 기차를 기다리며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흔적을 조용히 되새겼다. 돌아가는 내내 나는 불멸의 화가 반고흐의 그림들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그와 작별하지 못했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