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 칼럼] 추로지향(鄒魯之鄕) 안동유림이라는 사람들

입력 2025-05-11 12:31:12 수정 2025-05-11 22:17:45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공맹지도(孔孟之道)의 핵심인 유교의 5대 덕목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그리고 이를 상징화한 동인문(東仁門), 서의문(西義門), 남례문(南禮門), 홍지문(弘智門) 그리고 도신문(陶信門)이라는 5대 관문.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해 온 경상북도 안동의 도시브랜드는 온 도시에 흘러넘치고 있다. 성리학을 완성시킨 퇴계 이황의 고향답다. 20세기 문화대혁명을 통해 공자사상마저 파괴해버린 중국이 뒤늦게 유교의 원형이 보존돼 있다며 찾아오는 안동이다. 1980년 공자(孔子)의 77대 손 공덕성(孔德成) 선생이 도산서원을 찾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휘호를 쓰기도 했다. 추로지향이란 공자 고향 노(魯)나라 산둥(山東)과 맹자 고향 추(鄒)나라의 정신문화인 유교(儒敎)의 원형을 계승·발전하고 있는 유교의 본산이라는 의미다. '해동추로'(海東鄒魯)라 불리기도 했다. 해동 즉 우리나라에 있는 추로지향이라는 뜻이다.

공맹의 도리는 그저 인의예지신의 공맹지도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삶의 지표로 삼아 행하는 것이다. 임금이 민생을 소홀히 하면 상소하고 신하의 잘못을 탄핵하고 나라가 도탄에 빠지거나 외세의 침략으로 누란의 위기에 빠지면 독립운동에 나섰던 결기는 이런 공맹지도를 바탕으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안동이 독립운동의 본산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 안동이었다. 일제의 침탈에 만주로 이주, 신흥무관학교와 경학사를 세워 무장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한 석주 이상룡과 일송 김동삼이 안동인이었다.

21세기에 공자와 맹자를 들먹이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꼰대나 하는 잠꼬대라고 치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퇴계정신이 여전히 살아 흐르고 있는 안동이다. 안동 권씨와 의성 김씨, 안동 김씨 등 수십여 곳의 종중이 안동에 있어 유교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퇴계의 무불경(毋不敬, 일을 행함에 있어 조심하고 공경해야 한다) 등 생활수칙이 여전히 경계되는 곳이 안동이다.

벼슬을 마다하고 산림(山林)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공맹지도를 지키는 퇴계같은 선비를 우리는 '유림'(儒林)이라고 한다. 유림도 타락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연루된 대장동 개발비리사건 주범 김만배의 측근으로 알려진 최우향이 한국 유림을 대표해 온 '성균관'의 최연소 부관장을 지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조폭 출신으로 알려진 그가 어떻게 유림의 주요 직책을 맡아 활동했을까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9일 한 떼의 무리가 안동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독립운동의 산실 〈임청각〉에 모인 이들은 '안동 유림'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유교의 덕목을 충실히 실천해 온 공정과 정의로운 인물이거나 선비정신을 체화한 지도자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안동인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국민을 통합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시대적 소명을 구현할 적임자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동 출신인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도 말했다.

사실 유림(儒林)은 그동안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낸 적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안동 지역 유림사회가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도 없고, 지지해서도 안 된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안동 유림'의 명예를 욕되게 하는 사칭이다. 실제로 이날 지지 선언을 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니 권오을·권영세·이삼걸 등 민주당적을 가진 퇴역 정치인의 모습이 여럿 있다. 안동이 몇몇 인사들이 소란을 피운다고 흔들린다면 공맹과 퇴계의 가르침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추로지향'이 아니다.

추로지향 안동 시민들은 이 사태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이 후보가 대선 기간 안동을 방문하게 된다면 자신과 가족에 대한 안동에서의 여러 의혹과 소문에 대해 제대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