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이 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혼자서 온갖 가능성을 상상하고 결국 조심스러운 선택을 해버린 기억? 20대 초반, 나는 한동안 버스를 타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성수대교를 건널 때마다 추락사고가 날까 봐, 일어나지 않을 법한 만약의 경우를 상상하느라 불안했다. 가장 빠른 탈출로는 어디인지, 버스 승객 중 누구를 제일 먼저 도와야 할까를 고민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어이없게도 차라리 버스를 타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염려는 대인관계에서도 비슷했다. 내 감정을 드러내면 누군가 마음을 다치지는 않을까, 관계가 어긋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차라리 속말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덕분에 눈에 띄는 갈등은 없었지만, 대신 내 안에 쌓이는 감정들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누구에게는 웃으면서 안주거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행동들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진지했다.
이제 40대를 맞이하며 돌아보니, 내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알겠다. 표면적으로 평온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 안에서 내가 감수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더 큰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버스를 타지 않음으로써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이동의 불편함을 감수했고, 속마음을 숨기면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마음의 무게는 더 커졌다.
더군다나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나의 직업 윤리는 경제적인 이익이 목표가 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삶의 방향 역시 나의 이익보다는 주변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볼 지 언정 무엇을 쟁취하거나 타인의 것을 뺏아서 얻는다는 것은 갈등과 불편함을 초래하니 아예 그런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겠다. 물론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인생의 터닝포인트인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문화로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직업정신 뒤에서, 긍정적이고 안전한 이야기만 전하려 했던 것 같다. 아름답고 좋은 면만 보여주려 애썼고, 그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화의 한가지 측면만을 보아왔던 시기를 지나 불편함은 문제이자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것이 내 삶에 필요한 변화임을 인정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종종 불편함을 피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함을 회피하는 것이 결국 더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20대의 나처럼 사고에 대한 염려로 버스를 타지 않으면 결국 그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불편함이 우리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고, 그것을 지나보았을 때 삶의 길이 조금 더 넓혀질지도 모른다. 그 변화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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