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김지수] 임시 생활

입력 2025-04-27 13:55:59 수정 2025-04-27 17:46:58

사회부 김지수 기자

김지수 사회부 기자
김지수 사회부 기자

"언제 이동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하는 입소자가 많아요." 경북 북동부를 덮친 산불로 안동의 지적장애인 거주 시설에서는 나흘 동안 세 번이나 거취를 옮겨야 했다. 시설에서는 안동시를 비롯한 관공서 및 기관들과 실시간 소통하며 불길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거주지를 물색해야 했다. 언제까지 임시로 지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은 이들의 몸과 마음을 자극하며 더욱 아프게 했다.

시설 입소자들만이 아니었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임시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다. 산불 이재민 대피소 안동체육관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은 임시방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밭에 나와 농사일을 하던 중 몸만 대피하는 바람에 장화를 신은 채 생활하다 임시로 1만원짜리 운동화를 구입한 사람, 제대로 된 샤워 시설이 없어 세면대에서 머리만 감느라 상의 앞자락이 젖은 채 생활하는 사람, 갈아입을 옷을 챙겨 오지 못해 음식물 얼룩이 묻은 옷을 며칠째 입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사람들은 불에 타 버린 은행 건물 대신 버스에 임시로 설치된 간이 은행에서 업무를 봐야 했고, 단전·단수로 인해 임시방편으로 수도와 전기를 가져다 써야 했다.

임시 생활에는 한계가 있다. 안동체육관에서 만난 한 자원봉사자는 "언제까지나 이재민들이 '임시'로 지낼 순 없다. 임시 생활을 위한 구호 물품보다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각종 관변단체와 민간단체, 기업에서는 생필품을 보내왔고 창고는 물티슈, 생수, 간식이 담긴 박스들로 넘쳐 나고 있었다.

산불 피해 한 달 만에 찾은 안동체육관에는 여전히 구호 물품이 담긴 박스들이 체육관 안과 밖, 복도까지 늘어서 있었다. 옷가지와 슬리퍼, 계절에 맞지 않는 전기요 박스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지난달 말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권정생어린이문학관을 시작으로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주거 시설 '모듈러 주택'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주택 한 채는 약 27㎡(8.2평)으로, 전기·수도·배수 시설을 포함해 냉난방 기능까지 갖췄다. 현관, 욕실, 침실, 발코니로 구성돼 있고 조립 방식에 따라 층층이 쌓거나 모양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이재민 1가구당 1채씩 배정되며, 1인 가구의 경우 2, 3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이재민들은 최장 2년간 모듈러 주택에 무상으로 머무를 수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해 임시 주거 시설에 있는 이재민은 3천 명을 웃돈다. 도는 이달 말까지 임시 주택 1천여 동을 공급하고 다음 달 말까지는 이재민들이 모두 임시 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임시 주택을 최대한 빨리 지원해 이재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임시 주택이 장기적인 대책은 아니다. 설치 장소 확보, 상·하수도 및 전기 시설 설치, 주문 제작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계획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 더욱이 이재민들은 2년 뒤엔 새로운 거취를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의 주택 피해 보상금은 새 집을 마련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임시 생활은 불안함을 동반한다. 임시 주택과 구호 물품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재민들이 마음껏 이어 갈 수 있는 일상 회복 대책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