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설립 15주년 맞아…161종 도서 발간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 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출판계 전체가 힘들다지만 '지역'은 더욱 어렵다. 지역 출판사들은 서울이나 파주 소재 출판사에 비해 자본, 인력, 출판유통, 마케팅 등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환경 속에서 2010년 대구에 터를 잡은 '도서출판 한티재'가 지난 12일 설립 15주년을 맞았다.
한티재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161종의 책을 펴냈다. 한해 평균 10종의 책을 낸 셈이다. 게다가 매번 단단하면서도 색깔 있는 책을 선보이며 지역 출판의 지속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21일 대구 범어동 도서출판 한티재 사무실에서 만난 오은지 대표는 "대구에 이런 출판사가 있어서 좋다는 응원의 말을 들으면서 어떤 의무감과 책임감 같은 게 생겨났다.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15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출판사를 낸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서울의 한 대형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책 만드는 일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 잘 맞았고 재미가 있었다.
학과 1년 선배인 남편도 출판사에 근무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김종철 영남대 교수께서 자신이 발행하는 '녹색평론' 일을 같이 해보자고 남편에게 제안해 1998년 대구로 내려오게 됐다. 대구로 와서는 한동안 주부로 살았고, 아이가 커가면서 녹색평론사의 단행본 일을 조금씩 맡아 했다.
2008년 11월 '녹색평론사'가 사무실을 서울로 이전하면서 남편이 퇴사를 했고 이후 경북 의성으로 귀농했다. 하지만 귀농생활에 만족했던 남편과 아이들과는 달리 농사를 짓는 일이 힘에 부쳤다. 1년이 지났을 무렵 가족회의를 열고 대구로 다시 가 책 만드는 일을 해보겠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출판사를 내면서 특별히 목표한 게 있었나.
▶큰 욕심 없이 시작하게 됐다. 출판을 통해 뭔가 대단한 것을 한다기보다, 내가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한다는 것에 의미를 뒀다. 소박하게 한 권 한 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꾸준하게 책을 내다보니 어느새 15년이 됐다. 책을 낼 때마다 주변에서 응원과 격려를 해준 것이 많은 힘이 됐다.
지금 사무실 공간은 예전 녹색평론사가 쓰던 곳이다. 책상 등 집기도 마찬가지다. 저희가 귀농했을 때엔 친구들이 월세를 내며 이 공간을 썼다. 마침 다행히 이 공간이 있어 큰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한티재'란 이름이 궁금하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소설 '한티재 하늘'에서 따왔다. 20세기 초반 경북 북부지역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티재'란 이름은 대구경북 여러 지역 고개에 붙은 흔한 이름이다. 많은 이들이 출판사 이름에서 대구 팔공산 한티재를 떠올리는데 소설 제목의 한티재는 안동에 있는 고갯길이다.
권정생 선생은 저희 부부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특히, 남편은 녹색평론사에 근무하며 권정생 선생의 책을 편집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남편과 출판사 이름을 고민하다 '한티재'로 정하게 됐다.
-출판 기반 상당수가 수도권에 집중돼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지역 출판사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물류나 유통 문제 등이다. 출판사가 몰려 있는 서울이나 파주에 관련 기반이 잘 갖춰져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상당수 지역 출판사들은 기획과 편집을 제외한 나머지 공정을 파주 등 수도권에서 처리하고 있다.
2018년까지는 전 과정을 대구에서 처리했고 그런 점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출간한 책이 해마다 늘면서 책을 보관하고 출고할 수 있는 체계적인 물류 시스템이 필요했고, 결국 많은 출판사들이 이용하는 파주 쪽 물류 창고를 쓰게 됐다. 물류 창고가 파주에 있다 보니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제작도 파주에서 한다.
-출간 도서 목록을 보면 인문·사회 분야 책이 많다. 판매에 대한 걱정은 안 하나.
▶판매에 대한 생각과 노력은 늘 한다. 때론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있고, 이걸 계속해야 하나 고민도 한다. 반면, 안 팔릴 걸 알지만 '그래도 내자'라고 결정할 때도 있다. 어떤 책이 나와서 독자를 만나 우리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도 크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훌륭한 분들을 책을 매개로 만나면서 삶의 자세 등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애착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책이 있을 것 같다.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인 '커밍아웃 스토리'를 꼽을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성소수자는 이상한 사람들이고 내 옆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말을 못할 뿐이지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 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출간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측이 대구와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제안했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고 세종도서에도 선정됐다.
헌법학자인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인권이란 무엇인가'란 책도 의미가 남다르다. 저자와 10년 넘게 매월 1차례씩 한티재 사무실에서 헌법 세미나를 하며 인권에 대해 대중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달았고 이 책을 기획하게 됐다. 책이 나온 뒤 국가인권위 측이 인권 강사 양성에 활용하겠다며 책 1천권을 구입했다. 출판편집자로서 보람이 컸다.

▶지금 준비하는 책도 '퀴어 디플로머시'라는 성소수자 인권을 외교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부담은 없나.
-이 책의 지은이는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출신 캐나다 외교관이다. 자신의 외교 업무 경험을 비롯해 외교관, 인권 전문가, 유엔 관계자 등 29명의 인터뷰를 책에 담았다. 그는 국가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외교적으로 다뤄 온 역사와 그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과 협력의 양상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분석한다.
번역자는 국내 대형 출판사 몇 곳으로부터 거절당한 뒤 한티재로 이메일을 보내왔다. 편집장인 남편과 함께 이메일을 보면서 외면하면 안 될 책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럼 우리가 내자'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런 책을 내는 게 진짜 출판인이 하는 일이 아니냐"란 얘기를 남편이 먼저 했다. 이 하나의 발걸음이 성소수자 인권이나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결정했다.
▶많은 이들이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우려한다.
-앞으로는 종이책만으로 수익을 내는 출판은 아무래도 좀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좋은 책을 만들면서 소임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15년 동안 출판사를 운영하고 책을 내면서 한티재를 꾸준히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그런 마음을 경험하게 되면서 조금 어렵다고 '오늘 문 닫을래요'라고 할 수는 없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자랑스럽게 기억해줄 수 있는 출판사가 되겠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