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위기극복 릴레이 기고] 경북대 이시철 교학부총장 '새로 쓰는 지역대학의 길: 공공성, 지역, 혁신'

입력 2025-04-14 14:12:17 수정 2025-04-14 16:24:49

경북대 이시철 교학부총장
경북대 이시철 교학부총장

수도 아닌 변방에서 위대한 고등교육이 시작된 적이 있었다. 5세기 인도의 날란다 대승원, 11~12세기 이탈리아 볼로냐와 영국 옥스퍼드, 16~17세기 경북 영주와 상주의 소수서원과 도남서원은 이른바 명문 지역대학이었다. 각기 다른 시대와 문명에서 교육과 연구를 이끌었던 이들의 공통 토양은 국가의 뒷받침, 지역의 호흡, 시대를 이끄는 마음이었다. 서구 대학에 비해 조선의 서원은 체제와 기능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성리학 중심의 강학과 과거 준비 즉 중앙관료 양성에 치중하면서 여러 사회적 폐단을 낳았기에, 150여년 전 중앙권력에 의하여 대부분 철폐된 운명을 우리는 안다.

오늘 대한민국의 지역대학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인구감소, 청년 이탈, 수도권 일극화 등 바깥 요인만을 탓하기에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공공성, 지역성, 혁신의 세 축이 동시에 흔들린다. 자본이 연구를 이끌면서 '문사철'이 죽어가고, 시장이 대학을 점령했다고도 한다. 많은 경북대 졸업생이 대구 권역에 터잡지 못하고 떠나며, 대학이 더 이상 지역발전의 견인차가 아니라 쇠퇴의 징후로 여겨지곤 한다. 혁신은 더 어렵다. 재학생 25,000명의 경북대같은 국립대는 진정 '눈먼 코끼리'인가? '먹을거리 없는 빙하 위의 북극곰' 사립대와 비교하여 무엇이 더 나쁜지 식별이 어려울 정도이다. 덩치 큰 대학의 거버넌스, 행태, 학사제도, 성과관리 체제를 바꾸기가 참 힘들다.

공공성은 대학 특히 국립대학의 출발점이다. 배움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며, 보통사람이나 서울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같은 교육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1등 거점국립대학인 경북대는 나름대로 이 원칙을 지켜 왔다. 20개 단대에서 기초와 응용학문을 조화시키는 가운데, 낮은 학비와 다양한 장학제도를 유지해 왔으며, 공간적 균형에도 기여해 왔다. 동시에 21세기 시장의 수요와 연구 능력주의를 함께 지향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국립대의 공공가치에 대한 사명은 현행 교육기본법, 국립대학회계법 등에 제시된 법적 규범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안정적으로' 국립대를 지원하도록 의무화한다. 이를 지키기 어렵다면, 사회적 약속에 대한 위반이 된다. 국립대육성사업은 공공성을 위한 최소한의 보완장치이다.

지역성은 대학의 숨결이다. 대학은 지역의 산업·문화·생태와 엮일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경북대는 대구 광역권과, 한때 영남의 수부도시였던 상주 등에 흩어진 캠퍼스를 통해 도시·농업·의료·IT 분야까지 걸친 다층적 협업 생태계를 만들어왔다. 지역봉사, 지자체-산업체 실무 협력/연구, 지역민과 함께하는 평생교육도 그 연장선이다. 특히 최근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에서도 지역 중심의 고등교육 공동체 조성과 미래산업을 이끌 핵심인재 양성을 강조한다. 정주취업률, 미래산업 종사자 수, 창업기업 수 등 대구 RISE의 정량 성과목표는 글로컬대학 사업의 핵심전략 성과지표와도 정합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혁신은 어쩌면 대학이 살아남을 쉽고도 유일한 길이다. 진화하지 않으면서 살아남은 생명체나 조직은 없다. 글로컬대학 사업의 초점이 바로 혁신이다. 경북대는 단순한 디지털·AI 전환이나 구조 개편만이 아니라, 교육 방식과 지식의 사회환류 자체를 다시 짜면서, 진정한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한다. 여러 벽을 허무는 3대 융합연구원, 융합학부, 전공자율선택제, 학·석사 통합과정, 국제자율학부 등 모델을 실험 중이다. BK대학원혁신사업에서도 개별 전공을 넘어 대학(원) 전체의 변화를 추동하면서 걸림돌 제도와 행태를 바꾸고, 학사-연구의 꼭지 간 연계와 효율성을 높여왔다. 학술연구성과는 물론, 예산과 착한 규제, 엄격한 성과관리를 지렛대 삼아, 2024년 QS, THE 대학평가에 이어 대학원 혁신평가에서도 국립대 1위를 차지했다. 앞으로도 우수한 청년들이 더 많이 합류하기를 소망한다.

"좋은 도시를 만들고 싶다면, 좋은 대학을 세우고 200년을 기다리라"는 말이 있다. 너무 길다. 2026년에 경북대는 개교 80주년, 창학으로는 100년을 넘긴다. 우리는 이 땅에서 SKY만이 전부가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며, 그 역량을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 대학의 위기는 곧 지역의 위기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