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주현 기자
'신(新)현상'인지 궁금했다. 5개월에 이르는 지난날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이상적인 모습에 조금이라도 닿지 못하는 여야, 양극단으로 치달아 폭력과 욕설을 퍼부어 대는 아스팔트 위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이는 작금의 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인지,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현상'은 아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 후 톺아본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후 발행된 신문은 마치 오늘날의 신문과 같았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와 아스팔트 위 시민, 조기 대선 국면에서 난립하는 후보들, 차기 대권을 잡을 자로 분명해 보이는 거대 야당의 유력 후보. 인물과 정당 이름만 다를 뿐 우리는 어김없이 8년 전과 같은 정치 시스템 속에 살고 있었다.
유독 눈에 띈 점은 '개헌'이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1987년 체제 헌법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면서 여야 주요 인사, 정치 원로들은 너도나도 개헌을 주문했고 조기 대선 국면 속 개헌 논의는 본격 불 지펴졌다.
'신현상'일까. 아니다. 오늘날의 개헌 논의 역시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모습과 판박이였다.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당시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3당 원내지도부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했다. 그러면서 당시 치러지는 조기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당시 대권 주자들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다음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며 반대했다. 결국 3당 합의가 폐기 수순을 밟으면서 개헌에 대한 진정성보다는 대선 전 반문 세력 규합의 도구로 개헌을 활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개헌 시도가 있긴 했지만 이견 차이로 결국 실패했다.
지금의 정치도 별다른 바 없다. 2022년에만 해도 개헌을 적극 주장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개헌을 외면하고 있는 데다 국민의힘 조기 대선 주자들과 당내 개헌특위, 우원식 국회의장은 설령 큰 틀은 비슷할지라도 제각기 개헌 주장을 쏟아 낸다.
여기에 국민의힘 지도부 또한 대통령 파면 후 '개헌'에 거듭 목소리를 내며 민주당 대표에 비판을 가하는 중이다. 개헌 논의가 국면 전환용 카드나 상대 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만 사용되는 모습일 뿐 '올바른 정치'를 위한 논의다운 개헌 논의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겪으며 정치는 한 걸음이라도 진일보한 줄 알았는데 두 번째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다. 권력 공백기를 틈타 각자의 이권과 정치 유불리만 따지는 모습이 여전히 난무하는 게 작금의 국회다.
미래는 뻔하다. 대권을 쥔 누군가의 5년은 거듭 위기 속에서 흔들릴 것이고 정권을 잡지 못한 당은 극단의 성격으로 치닫거나 책임자 색출을 주장하며 서로를 향해 내부 총질을 이어 갈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는 도돌이표 굴레에서 허우적거릴 것인가.
"그런데 우리가 뽑았잖아요. 할 말 없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선고가 기각으로 나온 3월의 어느 날, 탄핵안과 비방만 날리는 국회의원을 향해 택시 기사가 기자에게 뱉은 말이다. 어쩌겠나.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우리 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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