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배주현] 도돌이표 정치

입력 2025-04-09 17:30:00

배주현 기자

배주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배주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신(新)현상'인지 궁금했다. 5개월에 이르는 지난날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이상적인 모습에 조금이라도 닿지 못하는 여야, 양극단으로 치달아 폭력과 욕설을 퍼부어 대는 아스팔트 위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이는 작금의 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인지,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현상'은 아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 후 톺아본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후 발행된 신문은 마치 오늘날의 신문과 같았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와 아스팔트 위 시민, 조기 대선 국면에서 난립하는 후보들, 차기 대권을 잡을 자로 분명해 보이는 거대 야당의 유력 후보. 인물과 정당 이름만 다를 뿐 우리는 어김없이 8년 전과 같은 정치 시스템 속에 살고 있었다.

유독 눈에 띈 점은 '개헌'이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1987년 체제 헌법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면서 여야 주요 인사, 정치 원로들은 너도나도 개헌을 주문했고 조기 대선 국면 속 개헌 논의는 본격 불 지펴졌다.

'신현상'일까. 아니다. 오늘날의 개헌 논의 역시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모습과 판박이였다.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당시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3당 원내지도부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했다. 그러면서 당시 치러지는 조기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당시 대권 주자들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다음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며 반대했다. 결국 3당 합의가 폐기 수순을 밟으면서 개헌에 대한 진정성보다는 대선 전 반문 세력 규합의 도구로 개헌을 활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개헌 시도가 있긴 했지만 이견 차이로 결국 실패했다.

지금의 정치도 별다른 바 없다. 2022년에만 해도 개헌을 적극 주장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개헌을 외면하고 있는 데다 국민의힘 조기 대선 주자들과 당내 개헌특위, 우원식 국회의장은 설령 큰 틀은 비슷할지라도 제각기 개헌 주장을 쏟아 낸다.

여기에 국민의힘 지도부 또한 대통령 파면 후 '개헌'에 거듭 목소리를 내며 민주당 대표에 비판을 가하는 중이다. 개헌 논의가 국면 전환용 카드나 상대 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만 사용되는 모습일 뿐 '올바른 정치'를 위한 논의다운 개헌 논의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겪으며 정치는 한 걸음이라도 진일보한 줄 알았는데 두 번째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다. 권력 공백기를 틈타 각자의 이권과 정치 유불리만 따지는 모습이 여전히 난무하는 게 작금의 국회다.

미래는 뻔하다. 대권을 쥔 누군가의 5년은 거듭 위기 속에서 흔들릴 것이고 정권을 잡지 못한 당은 극단의 성격으로 치닫거나 책임자 색출을 주장하며 서로를 향해 내부 총질을 이어 갈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는 도돌이표 굴레에서 허우적거릴 것인가.

"그런데 우리가 뽑았잖아요. 할 말 없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선고가 기각으로 나온 3월의 어느 날, 탄핵안과 비방만 날리는 국회의원을 향해 택시 기사가 기자에게 뱉은 말이다. 어쩌겠나.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우리 탓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