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 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대구를 대표하는 원로작가 차계남이 7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를 처음 만났던 건 작년, 작가가 참여했던 전시를 통해서였다. 가녀린 체구가 무색하게 작가는 거대한 스케일의 대작들을 주로 다뤘다. 갤러리 공간에 전시된 차계남의 작품들은 거대한 크기의 화면에서 비롯한 아늑함과 숭고함을 내뿜으며 공간을 압도했다. 씨실과 날실이 촘촘히 얽히고설킨 표면에서는 흘러가는 무수한 시간이 느껴졌고, 캔버스의 단단한 표면은 흔들림 없는 침묵을 전했다. 차계남은 한지와 먹이라는 가장 전통적인 재료로 가장 동시대적인 감각을 일깨우던 예술가였다.
그의 화업(畵業)은 물질을 통한 정신의 사유였다.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난 차계남은 사이잘 마, 한지, 먹 등 다양한 재료를 수행이라는 행위로 탐구하며 삶과 예술에 질문을 던졌다. 1980년대 본격적으로 국내외 여러 전시를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펼쳐나가며, 여성으로서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여러 현실적 제약(制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만의 미학적 언어를 구축해냈다. 전통을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본질을 꿰뚫은 뒤 그것을 다시 조형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차계남의 노동 집약적인 작업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관조적 태도로 조우하는 수련을 그 기저에 두고 있었다. 물성과 비물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화면들은 절제 속에서도 강한 내면을 드러내며 순간, 순간의 명료한 울림을 만들어 내었다.
유연한 재료들로 견고한 표면을 직조하는 차계남의 작업은 꼭 본인과 닮아 있는 듯했다. 필자는 예술을 대하던 그의 순수한 마음에서 문득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아이와 같은 맹목적인 태도, 그 단순한 애정이 그의 예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작업을 향한 열정, 언쟁, 질투, 그리고 몰입, 그 열렬한 사랑의 단상들은 마치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위버멘쉬(Übermensch)와 같았다. 차계남은 예술적 사명과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며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쉬운 것을 추구할 수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주어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긍정하는 능동적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었다.
차계남은 생이 다하는 직전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어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한 그의 열정과 헌신은 작업에 고스란히 담겨 예술적 업적을 남겼다. 예술가의 삶이 끝났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그의 예술이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차계남의 예술적 유산은 대구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또렷이 새기며, 여전히 새로운 영감을 전할 것이다. 그의 생이 다한 후에도 세대를 넘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물처럼 스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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