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발리에서 생긴 일…삶이 이끄는 대로, 열대 섬에서 보낸 8년
이숙명 지음 / 김영사 펴냄
"돈과 건강은 어디에 살든 걱정거리다. 하지만 이곳에선 내 존재 자체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덜하다. 그건 꼭 발리여서가 아니라 한국을 떠났을 때 얻을 수 있을 몇 안 되는 장점 가운데 하나다. 그 해방감이 때로는 낯선 땅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노력을 불사하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매력이기도 하다."(232쪽)
세상살이에 치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된다. 마치 격투기 선수가 치열하게 링 위에서 싸우다 하얀 수건을 던지고 내려오는 심정 마냥, 다 그만두고 최소한의 삶만을 영위하며 단출하게 살고 싶다는 그런 소망 말이다.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세계 4대 휴양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의 섬 발리. 이곳은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물가가 싸고, 풍경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착한데다, 날씨까지 따뜻해 유유자적하기 좋다.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고, 요가나 명상을 하거나 요리를 배우고, 저녁이면 야자수 아래 비치 클럽에 모여 칵테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삶이라니…. 생각만해도 환상적일 것 같지 않은가?

이 책 '발리에서 생긴 일'은 이런 흔한 사람들의 상상을 실제로 실현한 사람의 이야기다. 저자가 안정된 서울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돌연 발리로 떠난 데는 삶을 바꿔보겠다는 대단한 계획이나 결심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추워서', 생애 한 번쯤은 겨울을 피해 남국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몇 달 간 집필 여행을 떠났던 곳이 발리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서울은 저자에게 너무나도 낯설었다. 그녀는 "문득 외계 행성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들이 백 년 일해도 모을까 말까 한 돈을 전셋집에 깔고 앉아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면서, 웬만큼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몇 억은 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사는 내내 들어야 하고, 매 순간 남들은 어떻게 살고 또 뭘 더 가졌나 재고 따지면서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발리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뼈아픈 지적이지 않은가. 우린 매일 남과 비교하며 '내일' 걱정만 하다가 평생을 회사의 노예로, 집의 노예로, 은행의 노예로 하루하루를 허비하느라 속으로는 곪아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정착한 곳은 발리에서도 시골 섬으로 꼽히는 '누사페니다(Nusa Penida)'라는 최근 아름다운 풍광으로 관광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일 년 내내 여름이 계속되지만 전기와 수도가 하루에 한 번씩 끊기는 이곳에서 저자는 삶의 방식부터 건축과 비즈니스까지 온전히 새로 배웠다.

낯선 열대 섬에서의 생활이 마냥 이상적이진 않다. 작가는 떠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깨끗이 해결될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낙관을 경계하고, 미래를 향한 초조함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8년을 직접 부딪혀 본 경험하 본 저자의 직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지금 당장 이 나라에서의 삶이 괴롭다면, 상황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외국으로 떠나 일하며 사는 걸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묶여 있던 땅 밖으로 나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고, 안에 있을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실제로 동남아시아 국가 등으로의 이민이나 장기 여행 혹은 체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숙소나 비자 서류 등의 해결법 등 현실적인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저자는 "지금의 삶이 버겁다면, 앞으로 살아갈 앞날이 깜깜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진다면 편히 숨 쉴 곳이 이 땅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가보지 않고서는 결코 모를 일이라고, 그 가능성을 속단하지는 말자. 그러다 보면 지구 어딘가에 있는 나만의 천국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304쪽, 1만8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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