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초연과 재공연을 거친 이철희의 윷판이 안방에서 하는 윷놀이였다면, 4월 6일까지 공연되는 <요새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그, 윷놀이>(원작 윤조병의 윷놀이 재창작, 연출 이철희)는 극장 입구부터 이철희의 재치로 윷판을 여는 방식이다. '윷'이 나오면 "윷판 룰은 지켜야죠, 한 번 더 던지세요." '개'가 나오자 박카스 한 병을 주는 식이다. 전작에서 무대 벽면에 붙어 있던 나뭇가지들이 마을의 배경을 만들었다면, 수백 년을 버텨온 노송 소나무가 배경이 된다. 그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세월을 견뎌온 인생의 맞바람으로 고뇌를 이겨낸 듯, 나뭇가지는 꺾이고 휘어지며, 뿌리는 깊고 강직해 보인다. 누가 이런 고귀한 인생의 품격을 꺾으려 하겠는가. 그 자태가 인생이고 삶이며, 희노애락의 윷가락 세월을 견뎌낸 자세다. 노송의 그늘 앞에서 이철희의 윷판은 윤회하는 삶처럼, 죽음에서 삶으로, 인생의 고뇌와 갈등을 겪고 다시 죽음으로 이어진다. 당대 최고의 '주역가'로 꼽혔던 고(故) 대산(大山) 김석진 옹은 윷놀이를 주역으로 풀면서,"윷은 항상 해가 바뀌는 설날에 했다며, 해가 바뀌는 이치, 우주가 바뀌는 이치를 가지고 논 것이라, 윷놀이에는 잡고 잡히는 이치, 앞서고 뒤서는 이치, 살고 죽고, 죽고 사는 이치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김석진 옹이 말한 윷가락의 이치가 그 노송에 그대로 담겨 있다. 말판의 둥근 원은 하늘과 땅을 향하고 있으며, 주위를 둘러싼 원은 별을 상징해 우주의 28수를 의미한다. 말판은 곧 땅과 우주의 공간이다. 던지고 내쳐지는 윷가락이 엉켜서 인생의 모양을 만드는 윷판에서, 무한한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겨도 손을 잡는 미덕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조치원 해문이> 이후 이철희는 윷판의 윷놀이처럼 달려왔다. 개로 잡히고, 걸로 업고 달리면서 연극의 반환점을 돌아도, 쫓아오는 말들로 두세 판을 지고도, 이철희식 놀이성과 충청도 화법의 풍자정신으로 윷을 던지며 "한사리, 두 사리"를 외치며 충청도 연극 시리즈로 특화시켜왔다. 이철희식 윷판으로 백상예술대상 젊은 연극상과 서울예술상을 받으며, <진천사는 추천석>으로 대한민국 연극대상을 수상했다. 이철희식 연극 형식이 내공이 깊어진 것이다. 그만큼 <요새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그 윷놀이> 이후, 이철희는 한국적 정서와 놀이의 리듬을 통해 삶과 죽음을 관조(觀照)하는 작·연출의 변화를 보여주며, 충청도 화법의 말판이 느리게 진행되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극단 코너스톤의 연극을 이어왔다. 이철희식으로 특화된 무대 형식은 윷가락처럼, 삶과 인생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충청도 시리즈의 무대 형식은 윷가락처럼 삶과 인생이 선명하다.

◆윷판의 구조와 삶
윷놀이는 한국의 전통 놀이 중 하나로, 삼국 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온 오래된 놀이이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로 비유되는 네 개 윷가락으로 이루어져 농경사회에서는 점을 치기도 했다는 설도 있다. 윷놀이는 정해진 판 위에서 말(駒)이 움직이며 진행되는데, 삶의 구조를 상징한다. 달리고, 뛰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말을 움직이며 살아가는 희로애락의 모형이다. 상대와 경쟁하며 던져진 윷가락이 땅에 떨어져 뒤집히고 눕고, 비스듬히 놓여 '도', '개', '걸', '윷', '모'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윷판은 사회구조에서 법과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인간 삶의 이치와 닮았다. 출발점에서 종착점까지 이어지는 28수의 말판은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처럼 이어진다. 윷이나 모가 나와 말이 크게 앞으로 전진할 때의 기쁨은 희(喜)로, 예기치 않게 '빽도'가 나와 뒤로 한두 걸음 물러날 때의 화와 분노(怒)는 인생의 위기와 절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모나 윷의 즐거움(樂)으로 달려가다가 말이 업히거나 잡힐 때는 슬픔과 묘한 애(哀)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말판은 살아가는 삶의 구조이자 인간의 감정이다.
이렇게 윷판의 규칙처럼 윷놀이의 규칙과 전략이 놀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과 존재의 의미와 연결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 우연과 필연, 승리와 패배, 행운과 아픔이 모아지고 흩어지는 인생의 여정 동안 인간은 무엇을 위해, 왜 싸우고 살아가는 것인가라는 물음도 던지는 게 윷판이다. 그런 만큼 이철희의 <요새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그, 윷놀이> 윷가락은 논밭 농사하는 석구(강일 분)와 봉달(한철훈 분), 과수원 농사하는 진태(이강민 분)와 기태(윤슬기 분) 육신에 붙어 있어 운명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손바닥과 손등이 도, 개, 걸, 윷, 모 윷가락이 되고, 시골 마을 청년 말두(정홍구 분)는 말판의 판정사가 되어 도, 개, 걸, 윷, 모로 말판을 내달리는 놀이에는 인간 삶과 죽음이 맞닿아 생사(生死)를 알 수 없는 구음 소리에 몸짓으로 상여꾼이 된다. 윷가락을 던지며 "젠장", "씨부럴" 거리는 충청도 화법에는 희로애락의 인생사가 한 걸음, 두 걸음 내달리는 윷판의 정서도 담겨있다.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는 전작 공연과는 사뭇 다른 이철희 특유의 놀이성을 절제하고, 희곡의 결대로 삶과 죽음의 말판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철희의 연극은 윷놀이로 인간의 삶과 죽음, 희로애락을 윷놀이 판으로 담아냈고, 네 개의 윷가락을 인간으로 형상화한 윷판은 인간 만사 삶이요, 인생으로 풀어내며 손바닥과 등이 뒤집히는 인생의 순간처럼 윷판은 인간의 감정과 삶의 여정을 재구성한다. 등장인물들은 윷놀이를 통해 이철희식 특유의 느림의 미학을 드러내기도 하고, 인생과 삶에서 교차하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풀어내며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메타적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만큼 이철희 연출은 윷놀이의 구조 속에서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의 다양한 단면을 웃으면서도 느리고, 느긋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배우들은 마치 윷의 말이 된 것처럼 극적인 몸짓과 동작, 표정으로 표현하며, 윷가락이 모아지고 흩어지는 삶과 인생에서 인간이 느끼는 찰나의 감정을 놀이성이 강조되는 퍼포먼스로 장면을 시각화하기도 한다.

◆ 삶과 죽음의 인생사 '그 윷놀이'의 마당
무대는 농가 마당처럼 보인다. 조명으로 멍석을 턱 만들고 좌우 배우들 이동 통로도 삶과 죽음으로 교차하는 공간이다. 노송나무 한 그루가 배경을 하고 있다. 무대는 현재인지 과거인지 모를 정도로, 사자들이 인간 세상에서 윷판을 즐기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분위기 속에 그 뒤로는 수백 년을 견디어 온 것 같은 노송 한 그루가 지키고 있다. 무대공간은 삶과 죽음이 교차되어 보이고, 물안개 사이로 들려오는 '여어엉차, 자욱한 물안개야' 하는 상여꾼들의 구음 소리가 연극의 시작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 축제의 놀이를 배우들은 몸으로, 소리로, 미세한 몸짓으로 상여의 구음이 되는 감각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과 상여꾼들 구음이 구분되어 있는데, 죽음에서 삶으로 겹치는 공간은 윤회(輪廻)적이다. 그만큼 윷판의 윷가락(놀이)은 삶과 죽음, 그리고 윤회의 개념으로 상징적인 공간이 된다.
윷판으로 풀이하면, 말의 시작점은 삶을 시작하는 생(生)에 해당하고, 말의 이동인 로(老)는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길이다. 윷이 나와도 걸로 달리는 말을 잡고, 도로 윷이 잡히는 위기의 순간은 병(病)이고, 말이 잡히면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사(死)이니, 인생의 한 바퀴를 돌아 인생을 시작하는 삶으로 되돌아오는 재생(再生)에 해당한다. 말판은 윤회와 환생(再生)을 상징한다. 삶은 윷놀이와 같아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순환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산자도 죽음을 바라보고, 상여 소리의 죽음도 산자가 된 것처럼 이철희의 상여(꾼)는 그 죽음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로 중첩시키고 있으며, 마당에 모여 "북망 산천 머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 뭐 이렇게 메기면, 아. 쫌 받어줘. 민망 허잖야." 하며 하는 봉달(한철훈)의 상여 놀이도 마치 죽음 이전, 마을의 전경과 과거들이 재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윷판이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의 경계인 만큼 이들이 살아가는 무대도 죽은 자와 산 자가 섞여 있는 것처럼 보여 현실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 산자와 죽은자들의 축제
<요새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그 윷놀이> 윷판은 상여꾼 소리부터 석구 아내 연희(곽성은 분)의 등장까지는 이철희식으로 극중 인물의 대화로만 진행되는데, 허허실실, 느릿느릿 충청도식으로 받아치고, 개로 잡고 걸로 달리면서도 손바닥과 손등으로 섞이며 땅에 부딪히고 윷가락 모양이 흩어지고 모이는 사이에는 희노애락, 생로병사, 재생(再生)의 길이면서도 희노애락의 윷판은 삶의 축제이다. 연극은 메타성을 드러내는 극중 형식의 놀이로만 진행되는데, 특별한 장치는 없다. 배우들의 윷판이 극 중 장면이고, 이들 대화가 윷놀이처럼 인생이요, 놀이로 윷판을 벌이는 연극이다. 네 명의 극중 인물이 손등과 손바닥으로 윷가락을 만들고, 때로는 땅에 부딪히며 도, 개, 걸, 윷, 모의 모양을 만들어 내는 극 중 인물들의 느림의 움직임 또한 인생의 기다림과 시간의 길이들이다. 윷판에 사건이나 갈등은 없으면서도 연희의 등장부터 윷판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당숙이 죽었다고 말하는데도 연희는 "소고기국에다 고봉밥 말어 갖고 짐치 척척 얹어 잡숫는 거 보고 오는 길인디."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철희 연출은 이 장면부터 윷판과 연희의 이야기가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몽환적이고 불확정적인 장면으로 형상화된다. 연희는 딸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 혼란에 빠져 있고, 그로 인해 전개되는 대사와 장면들은 현실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상여 소리와 마을의 윷놀이가 교차하는 설정부터 죽음과 삶이 윤회로 이어지는 인생의 구조성을 드러냈다면, 연희가 딸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망자의 대화처럼 몽환적으로 처리되어 비현실적으로 전달된다. 딸의 취직 시험 전보를 들고 온 연희의 모습이나 금순의 소식을 물어보는 봉달의 대화, 죽은 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이 그렇다. 이러한 장면들은 윷판에서 말들이 달리며 죽음과 삶을 맞닥뜨리는 것처럼, 인생의 고통과 희망, 기다림이 강조되기도 하고, '모 한사리, 모 두사리'라는 구호가 반복되면서, 희망의 윷가락을 던지는 장면에서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기다림의 삶은 마치 윷놀이에서 윷가락을 잡는 차례가 돌아오는 것처럼, 때로는 인내를 요구하고, 때로는 그 기다림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철희는 연희라는 인물을 통해 삶과 죽음, 인생의 불확실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연희의 내면을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처리함으로써, 관객이 그 속에서 인생의 본질을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장면화를 구성하고 있다.
석구 부부의 아픔도, 봉달의 기다림도 도, 개, 걸, 윷, 모의 말판(인생)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다. 그래서일까 연희의 퇴장부터 "윷 놀아야지" 하며 던지고 내치는 윷판은 삶의 축제처럼 신명의 윷판으로 변화된다. 석구와 봉달은 내리 두 윷으로 계룡산 정기가 윷가락에 내렸다며 신령님들이 말판 위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며 "(윷) 놀이 한판에 살다가 죽고, 두 (윷) 나오면 죽다가 사니, 알쏭달쏭 (모)를 시상 헐렁하게 살아보자"며 덩실덩실 되기도 하고, 걸로 잡아야 하는 마지막 윷가락은 걸이 되는 등판보다 개가 되는 배판이 곱절은 더 올라왔다며 윷판이 싸움판이 되는데도 정이 붙은 충청도식 욕에도 웃음이 터지니 희노애락의 절정이 보인다. 배판(걸), 등판(개)하며 봉달의 뺨을 내리친 석구도 딸이 취직됐다는 소리에, 금순이를 찾았다며 슬쩍 물러서는 미덕으로 "형님덜이 살려줘서 고맙다"며 "형님들이 최고유" 라는 기태와 진태의 말에 인생은 혼자만 이기고 앞서며 갈수 없는 것이며 윷가락이 네 개인 것처럼 인간 세상도 화합을 이뤄야 윷판이 되는 것이다.

◆ 이철희식 윷판의 배우
무대에 말판이 있고, 손등과 손바닥이 윷가락이 되는데 <요새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그 윷놀이>에서 다른 극적인 구성이 뭐가 필요할까. 이철희 특유의 충청도식 말투와 느림의 미학 사이에서 80분 동안 인생과 삶과 죽음, 아픔으로 채웠고 아쉬운 것은 이철희식 웃음이 줄었다는 것이다. 강일, 곽성은, 한철훈, 이강민, 윤슬기, 정홍구 배우들도 이철희식 윷판을 달리는 연기가 감각적인 말들이다. 기태역의 윤슬기는 경산시립극단에서 정년을 할 수 있는 배우로 있으면서 안정된 환경을 버리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겠다고 올라와 창작공동체 아르케에서 배우로 활동하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정홍구도 서울시극단 연수단원을 거쳐 이철희 연출 작품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두 젊은 배우는 그만큼 무대가 무서운 줄 알고 사활을 걸고 연극을 한다. 이철희식 윷판은 희노애락, 생노병사의 길로 돌아가는 삶이 윷놀이 같은 인생이고, 윷놀이가 극적이고 이철희식으로 무장된 배우들의 연기가 무기이다.<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는 4월 6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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